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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이다 May 03. 2022

폐허에도 나무 한 그루가 모여서 숲이 되듯

- 그림에세이(10)

 “내가 여기 처음 세 들어왔을 때 전쟁터 같았어요. 온갖 쓰레기로 엉망이었거든요. 한 일주일 청소하고 싹 정리하고 나니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당시 내 몸무게가 60킬로 정도였는데 53킬로가 됐더라고요……. 사람들이 저 여자, 저기서 석 달 정도 버티겠나 자기들끼리 수군댔다던데,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어머, 그 정도였어요? 보통 사람이면 엄두도 못낼텐데,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그런 건 아니고요, 가게 세가 싸서 들어왔지요. 당시에 절박했거든요.”


마침 식당이 한가한 때였다. 내가 주문한 비빔국수를 준비하면서 아주머니는 가게에 어떻게 터를 잡게 됐는지 이야기해줬다. 지난번에 이곳 가게를 우연히 발견해서 들어섰다가 예상치 못한 가게 환경에 화들짝 놀랐던 터였다. 꽤 규모 있는 아파트 단지의 지하상가이므로, 그런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찬가게, 분식집, 일상용품 점포들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을 줄 알았는데, 텅 빈 곳의 적막감과 어두움을 마주하고는 당황했다. 여기도 한때는 가게와 손님들이 물건을 사고파느라 북적댔을 테고, 그래서 한 평의 공간도 노는 데가 없었을 텐데, 지금은 휑뎅그렁하다 못해 쓸쓸하고 황량한 느낌이었다. 국수가게 말고는 떡집과 이발소가 그나마 영업을 이어가는 정도였고, 나머지 공간은 버려진 집기와 가구들을 검은 천막으로 덮어 놓아둔 상태였다. 


이웃동네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국수라는 간판에 이끌려 지하상가로 내려왔다가 뜻밖의 광경에 화들짝 놀라서 도로 계단으로 올라서려고 했다. 그런데 내 뒤를 이어서 다른 손님들이 연이어 들어왔고, 어쩌면 여기가 숨은 동네맛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게에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손목이 아파서 병원에 들렀다 오던 참이었다. 아주머니가 쉼 없이 김밥과 국수를 말고 있는 모습을 곁에서 보는데, 온종일 저렇게 음식을 만드느라 손을 쓰는 분들의 손목은 얼마나 아플까, 하고 괜스레 걱정이 됐다. 아주머니께 손목 어떠시냐고 물으며, 방금 손목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받고 오던 참이라고 이야기를 건넸더니 아주머니는 당연히 손목이 아프다고, 먹고 사느라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약한 내 손목이 속상해서 나도 모르게 한숨 가득한 푸념이 나왔다. 


 “저는 아주머니처럼 손목을 많이 쓰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아플까요?”

 “아이쿠, 저런. 사람마다 사정이 다른 거죠. 손목을 조금만 써도 아픈 사람이 있고, 종일 막 써도 괜찮은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언니 같은 사람은 손목 아껴서 써야 해요. 남들이랑 비교하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주머니가 준비한 국수를 내 앞에다 내놓는데,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표정과 목소리였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건 마치 오래전에 늦게 귀가한 내게 엄마가 배 고프겠다, 얼른 먹어라시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수를 차려주던 장면과 겹쳤다. 뜻밖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 고마운 위로를 받고는 괜스레 울컥해졌다. 아주머니 국수는 참 맛있었다. 내 예상대로 동네의 숨은 맛집이 맞았다. 어딜 가도 국수집은 흔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국수가 맛있는 집은 드물어서 앞으로 국수가 먹고 싶으면 여기서 먹어야지 싶었다. 


그러고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이미 아는 공간과 분위기 때문인지,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그리 어둡거나 휑뎅그렁한 느낌이 아니었다. 그날은 떡집이 휴일이라 아주머니 국수집만 불을 켜놓았는데도 그랬다. 내가 주문한 비빔국수를 아주머니가 준비하는 동안, 아주머니가 한때 번성했던 이곳을 거의 모든 이가 떠나는 동안 꿋꿋하게 버티신 세월이 존경스러워서 얼마나 오래 가게를 하셨는지 알고 싶어서 물었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대답은 뜻밖에도 3년이 다 되어간다는 것이었고, 내게 여기 가게 여는 데 관심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고는 덧붙이는 이야기가 저기 카페도 인테리어를 끝내고 곧 문을 연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정말 내 맞은편에 하얗고 말끔한 인테리어로 단장한 카페가 개점을 준비하는 광경이 보였다. 


 “우와, 아주머니가 여기서 잘 터를 잡으시니까 다른 가게도 들어오고 그러네요.”

 “글쎄요, 잘 되는 건 아니에요. 언니같은 사람이 하나둘 찾아오고 그러는 게 말이죠, 내게는 풀 한 포기가, 꽃 한 송이가, 나무 한 그루가 모여서 숲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세월이 3년이 되어 쌓이고 있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주머니가 주문한 비빔국수를 내 앞에다 내놓는데, 그곳은 더 이상 내게 빈 가게가 많아서 어둡고 쓸쓸하고 황량한 지하상가가 아니었다. 손님을 부르는 불빛을 환하게  밝힌 각양각색의 점포들이, 여기 지하상가에 하나의 커다란 숲을 이룬 장관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이웃동네 국수집>, 펜과 수채, 16절,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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