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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졍씅 Jan 13. 2024

만취한 체 기차 탄 썰(feat. 옥토버페스트)

나는 술을 참 좋아한다. 처음에는 술이 들어가고 취기가 올라왔을 때 그 붕 뜨는 기분을 좋아했다. 지금은 좋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혼자 마시든 여럿이 마시든 다 좋다. 주종도 가리지 않는데, 교환학생 이후 와인까지 빠져 싫어하는 술을 찾는 게 더 빠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술이 비싼 게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집세를 아끼려고 떠난 첫날 저녁, 나는 만취한 체 기차를 타게 된다. 옥토버페스트의 오픈 일에 맞춰 뮌헨을 가기로 정했는데 문제는 예약을 너무 늦게 해서 남는 숙소가 한 개도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맛보기로 짧게 즐기고 저녁 기차로 다른 도시로 넘어가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비행기가 살짝 연착이 되어 뮌헨 역에 도착했을 땐 퍼레이드가 진행 중이었고, 만나기로 한 동행은 파토를 냈다. 혼자서 맥주를 마시기엔 멋쩍어 서둘러 다른 동행을 구했다. 역에서 축제 장소까지 이어지는 퍼레이드는 화려했고 사람이 가득했다. 인파를 따라서 행사장에 다다랐고 각종 맥주 회사들의 천막, 독일의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 번쩍이는 놀이기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시 후 일행을 만나 어색한 인사와 함께 술 마실 자리를 찾아 나섰다.

예상보다 사람이 많고 자리가 나지 않아 다들 당황스러웠다. 맥주 회사를 선택하기는 개뿔 어디라도 좋다는 마음으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마침내 생긴 자리에 끼여 앉았고 옆 사람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시끄러운데도 마냥 좋았다. 종업원은 곡예사처럼 한 손에는 안주를 쌓고 한 손에는 1리터 맥주잔 몇 개를 가뿐하게 들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닌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 혼자 멈춰있는 기분이었다. 햇살은 따스하고 맥주는 시원하고 실없는 대화에 계속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한 잔만 마셔야지 하는 게 두 잔이 돼서 맥주를 2리터나 마시게 되었다.

햇빛이 눈부셔서 그런지 유난히 빨리 취해버렸다. 하지만 취기에 정신 팔릴 새가 없었다! 나에게는 기차를 잘 타서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미션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 정신에(아마 맥주 냄새 풀풀 풍기며) 락커에서 짐을 찾아서 탑승 게이트로 이동하고(심지어 게이트도 바뀌었다!) 무사히 기차에 탑승했다. 역시 술은 정신력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기차의 탑승하고 나서는 긴장이 풀려서 도착지까지 2시간 동안 정신 모르게 잤다. 소매치기든 뭐든 큰일 날 수 있는 상황인데 저 정도로 무방비 상태였는지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았고, 목적지가 종점이라 망정이지. 숙면 이후 정신 차리고 숙소도 잘 찾아갔다. 나의 우당탕탕 옥토버페스트 맛보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이것 말고도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여럿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지만 그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안전한 여행은 없다. 개인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뿐. 그리고 술 없는 여행을 즐기기엔 술을 너무 좋아한다.     

10월 말 포르투에서 근사한 식당에 갔다. 타파스라는 간단한 안주와 술을 파는 곳이었다. 옥토버페스트 때보다 혼술력이 늘어 당차게 가게에 들어갔다. 가격이 저렴해 큰 기대 없이 안주와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이게 웬걸, 내 주먹보다 큰 잔에 와인 절반이 따라져 나왔다. 그때의 그 놀람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마셔도 마셔도 술이 남아 있는데 심지어 맛있어!! 술쟁이는 화이트 와인을 한잔 더 시키고 안주도 하나 더 시켰다. 그리고 술에 취해 가게를 나오게 되는데,,

데자뷔인 것처럼 술엔 취했는데 하늘은 눈부시고 기분은 좋았다. 시간은 오후 3시, 졸음이 몰려와서 결국 공항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잤다. 공항 벤치에서. 술에 취해 공항에서 낮잠이라니. 혼자서 참 자유분방하게 다니는 거 같아 뻘하게 웃기다.     


술이 가져다준 재밌는 일들, 경험이 많다. 진탕 마시고 힘든 다음 날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지만, 내 잘못이지 어디 술이 잘못한 게 있나. 부끄러운 추억거리까지 만들어주는 미워할 수가 없는 존재다. 요즘은 절주 하려고 노력하는데 맘처럼 쉽지는 않다. 뭐 못하면 어때, 즐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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