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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Nov 25. 2019

[에세이 76] 일상 속 길어 올리는 작은 성공들의 힘

[ 여니의 크루 에세이 07 ]



올해 초, 운동하다가 허리를 삐끗한 이후로 6개월간 운동을 중단했다. 사실 회복하기까지 3개월밖에 안 걸렸지만 다시 헬스장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3개월이 더 걸렸다. 이젠 정말 안 가면 영원히 안 가겠다 싶을 때 겨우 발을 뗐다. 오랜만에 헬스장을 찾아가 운동을 하려고 거울을 보는데 그새 둥글둥글해진 어깨선,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허벅지 사이, 볼록한 배가 보였다. 운동을 해도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고 건강한 돼지가 되기 위해서였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훅 치고 들어오는 선생님의 한마디를 듣고 말았다.

"본인이 통통한 거 이제 좀 알았네!"



그래서 결심했다. 빼빼 마른 몸까진 아니어도 스스로가 이 정도면 됐어 싶을 만큼까지만 살을 빼보자고 말이다(다행히 기준이 높진 않은 편). '다이어트= 식이 8 : 운동 2'라는 진리의 공식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 나다. 이 트레이너 선생님과 처음으로 운동한 게 벌써 약 3년 전이니, 중간중간 쉬면서도 나도 꽤 오래 운동을 해온 셈인데 살은 정말 1g도 안 빠졌다. 웨이트 트레이닝 일주일에 2-3번 하고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먹었기에 많이 찌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러니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서도 왠지 좀 짜증이 났다. 운동해도 안 빠질 살, 이거 또 언제 다 빼고 앉았느냐며 투덜댔다. 굉장히 먼 길을 이제야 천천히 걸어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달라진 게 있다면 딱 하나,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진행하되 끝나고 20분 러닝머신을 더 뛰고 가기였다. 그렇게 사소한 운동 하나를 더 추가했다.


운동 끝나고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지만 꾹 참고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 20분을 더 뛰었다. 그렇게 운동한 게 며칠이 되니, 조금씩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이왕 운동하는 거 군것질은 좀 덜 하고 싶어서 회사 탕비실 내 온갖 과자들에 습관적으로 가던 손길을 점차 거두었다. 그러다 일주일에 2-3번 가는 운동을 한번 더 가고, 밀가루 식사 빈도수를 3에서 2로 줄였다. 물론 프로 다이어터가 아니기에 약속이 있어 밀가루나 기름진 음식을 먹게 될 땐 또 행복하게 먹었다. 이런 루틴이 조금 익숙해질 때 즈음, 조금 더 나아가 저녁 1-2번을 공복 운동 후 단백질 쉐이크 먹기를 시도해볼 수 있었다. 크게 바꾸며 도전한 건 하나도 없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바꿨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이 이럴 리가 없는데 비교적 빠른 속도로 살이 빠지는 게 보였다. 이전 같았으면 운동을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1년을 꾸준히 한다는 전제 하에 빠졌을 만한 살이 한 달 만에 빠졌다. 고작 2키로 빠진 것이었지만, 2-3년간 운동하면서도 '나는 살이 정말 안 빠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기에 이 정도나마 살이 빠졌다는 작은 사실이 매우 놀랍게 다가왔다. 고통스러운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니고, 작은 행동 하나씩 하나씩 더한 것일 뿐인데 나에겐 없을 것 같던 변화를 직접 목격하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은 내가 살이 빠진 걸 모를 수 있어도 나는 확실히 느끼기에 자신감이 점점 붙었다. 목표 체중까진 한참 남았지만 평생 고등학생 이후 못 찍을 거라 생각했던 몸무게도 찍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요즘이다.


왠지 운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신발. 쌤이 바닥 평평한 신발이 좋다고 하셔서 신는데 아직도 신을 때마다 좀 이상하다.


이번 한 달, 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었던 건 한 달 동안 2kg를 뺐다는 그 사실이 아니라 사소한 행동이라도 하나씩 쌓으며 스스로의 변화를 직접 목격한 것이다.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내지 믿음에는 본인이 직접 작은 성공들을 이뤄나가는 것만큼 강력한 게 없기 때문이다. 20분 런닝머신 타기부터 시작된 작은 성공은 또 다른 작은 성공을 불러왔고 결국 작더라도 무언가가 되게 한다는 걸 뜬금없게도 다이어트를 통해 알아가고 있다. 사소한 성공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요즈음 나는 나름의 큰 결심을 한 게 하나 있다. 애써 무시하고 있었지만 꾸준히 들려왔던 작은 마음의 소리를 직접적으로 마주했고, 결국 해보기로 했다. 무엇인진 후에 또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또 가보지 않은 길 앞에 서는 기분은 설레면서도 매우 막막하다. 그럼에도 그저 하고 하다 보면 또 하나씩 열리겠지 라며 스스로도 놀랄 만큼 담대하고 단순하게 결정을 내린 건 내가 목격한 작은 변화가 가져다준 또 다른 선물이 아닌가 한다. 아마 올해의 마지막 크루 에세이지 않을까 싶은데, 다음 크루 에세이를 쓸 때는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리는 사소한 성공들의 힘을 또 한 번 믿는다.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지난 한 달, 스스로를 너무너무 칭찬해주고 싶은 사소한 일은 무엇인가요?



•이번 한 주, 하루에 한 번씩, 마음속에 감사한 일을 새겨보는 건 어떨까요?

[에세이 75. 일상 속의 작은 감사]

[작은 감사[에세이 7] 일상 속의 작은 감사[에세이 75] 일상 속의 작은 감

•지난 한 주,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나요?

[에세이 74. 어제 나는 부분적으로 죽고 말았다]


매일 나를 눈뜨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에세이 73. 알람 없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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