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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r 04. 2016

삶은 죽음을 향한 전주곡

④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

베토벤은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동반자였다. 부다페스트, 비엔나, 프라하, 베를린 어느 도시를 가도 베토벤을 만날 수 있었다. 베토벤이 머물렀던 집, 베토벤이 여름휴가를 보낸 별장, 베토벤의 곡이 연주된 극장, 베토벤, 베토벤, 베토벤. 유럽에서는 라디에이터 돌아가는 소리에서도 베토벤이 들릴 정도였다.


오래된 음악의 도시, 부다페스트에도 베토벤은 있었다. 안드라시 거리에는 헝가리를 대표하는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를 기념하는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유별난 건물은 아니다. 리스트가 직접 살았던 집을 그대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리스트는 말년에 이 건물에 들어와 살면서 음악원을 설립했다. 가이드북의 설명에는 저택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실제 박물관은 작고 소박했다. 건물의 2층 전체를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데 전시공간을 다 합쳐도 30평 정도였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에 피아노가 4대, 오르간이 1대가 있었다. 

'피아노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기악 연주에 천재였다는 리스트 다웠다. 

박물관 창 밖으로는 안드라시 거리가 고스란히 보였다. 리스트가 작곡을 할 때 사용했다는 책상은 창문 아래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리스트의 책장이 있었고, 책장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오르페우스> 같은 책들이 보였다. 모두 리스트가 실제로 읽었던 책들이었다. 책장 옆에는 베토벤의 흉상이 있었다. 리스트 박물관에는 리스트와 관련 있는 음악가들의 초상화가 많은데, 흉상은 베토벤만 있었다. 그만큼 베토벤은 리스트에게 중요한 존재였다. 


이덕희의 <왜 베토벤인가>를 보면 리스트가 베토벤을 처음 만난 일화가 나온다. 리스트는 자신의 피아노 스승인 체르니를 통해 베토벤을 처음 만났다. 그때 리스트의 나이가 11살이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미 피아노의 천재로 비엔나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리스트는 베토벤 앞에서 바흐의 푸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쳤다. 베토벤은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대단한 놈이구나."라고 말하며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리스트는 이 순간을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자부심으로 남아 있지. 내 예술 경력의 수호신이라고 할까."라고 회상한다.

리스트 박물관에 있는 베토벤 흉상

베토벤의 열광적인 팬이었지만, 리스트 자신도 위대한 음악가였다. 리스트는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덴마크의 동화작가인 안데르센은 리스트의 공연을 직접 본 소감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해방시키기 위해 연주해야만 하는 귀신이었다. 마치 고문을 받는 듯 그의 선율에는 피가 흐르고 신경들이 전율했다. 그러나 연주를 하는 사이 그의 귀신 들린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그의 파리한 얼굴에 떠오르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표정을 보았다. 눈동자를 비롯해 그의 이목구비에서는 성스러운 영혼이 빛을 발했다." <안데르센의 지중해 기행>


리스트는 연주만큼이나 작곡 능력도 대단했다. 피아노 연주곡으로는 가장 어려운 곡으로 꼽히는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이나 <순례의 해> 같은 곡들이 그의 대표곡이고, 말년에 헝가리 집시음악을 활용해 작곡한 <헝가리 광시곡>도 유명하다. 리스트 기념관에는 실물 크기로 만들어진 리스트의 오른손 조각상도 전시돼 있었다. 피아노는 양손으로 치지만, 작곡은 오른손으로 한다.


리스트 박물관은 활기가 넘쳤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관람객보다 같은 건물의 3층과 4층에 있는 음악원 학생들이 더 많이 보였다. 박물관이 건물 2층에 있는 덕분에 악기를 매고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다. 리스트가 사용한 피아노나 조각상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리스트의 후예들이 음악을 배워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리스트 박물관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말은 이런 곳을 두고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헝가리 국립 오페라 하우스에 있는 리스트 흉상

리스트 박물관에는 책장이 두 개나 전시돼 있었다.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책장이었다. '음악가의 박물관에 웬 책장?'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리스트가 교향시로 유명한 것을 떠올리고는 납득이 됐다. 교향시(Symphonic poem)는 교향곡(symphony)과 시(poem)를 하나로 합친 장르다. 문학이나 회화에서 얻은 영감을 음악으로 풀어낸 장르라고 보면 된다. 리스트는 19세기 독일 관현악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교향시라는 장르를 직접 만들어냈다. 그가 교향시에 활용한 문학 작품은 프로메테우스, 오르페우스, 햄릿 등 다양하다. 


특히 리스트의 교향시 3번 '전주곡'은 그가 작곡한 13편의 교향시 중에서도 단연 명곡으로 꼽힌다. 삶과 죽음에 대한 리스트의 해석이 담겨 있는 곡인데, 사랑과 갈등, 휴식과 투쟁으로 이어지는 주제들에 맞게 관악기가 절묘하게 배치돼 있다. 곡 전체를 감싸고 있는 비장한 분위기, 주제마다 180도 다른 선율, 이런 것들에 빠지다 보면 20여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전주곡에는 곡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서문이 표지에 붙어 있다. 서문은 "우리의 인생이란 죽음에 의해 그 엄숙한 첫 음이 연주되는 미지의 찬가에 대한 전주곡이 아니겠는가?"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차피 우리의 삶은 죽음을 향한 전주곡에 불과한 것이다. 삶이 끝난 이후에야 미지의 찬가가 시작된다. 리스트는 죽음을 터부시하기보다 삶의 한 국면으로 인정했다.


<<전주곡 듣기>>


이런 죽음에 대한 인식은 리스트의 곡뿐 아니라 헝가리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서 드러난다. 헝가리는 유럽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하고, 자유와 방황을 즐기는 집시들의 나라이기도하다.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은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 몸을 던진 곳이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사상가인 게오르그 루카치도 사랑하는 연인이 도나우 강에서 자살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루카치가 쓴 단편소설 <마음의 가난에 대하여>에는 죽음에 대한 그의 철학적인 고민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연인이 자살한 이후 "나는 삶에서 탈퇴합니다"라고 선언한다. 헝가리 사람들에게 죽음은 삶의 또 다른 범주였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엘리자베스 다리. 어둠에 잠긴 강은 검푸른 빛을 내고 있다.
화려한 조명이 가득한 국회의사당 근처의 도나우강. 조명을 받아 강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해질 무렵의 도나우강. 하늘을 닮아 쪽빛을 머금고 있다.

프롤로그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용기가 아닌 동기

① 부다페스트 밤의 풍경

야경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빛이 아닌 어둠이다

② 부다페스트 키슈피파 레스토랑

글루미 선데이의 선율을 따라

③ 부다페스트 테러하우스

헝가리에게 히틀러와 스탈린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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