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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r 06. 2016

시는 음악이 되고, 음악은 미술이 된다

⑤ 빈 제체시온 클림트 <베토벤 프리즈>

지하로 향하는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어딘가에서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린다. 반쯤 열린 문 너머로 하얀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높이 들고 하얀 벽에 그려진 벽화를 바라보고 있다. 다들 넋을 잃은 모습이다. 사진 촬영이 안 된다는 푯말이 문 앞에 있다. 사진기를 잠시 넣어두고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크지 않은 전시실에는 벽화뿐이다. 전시실 한쪽의 모니터에서는 거리 연주자가 베토벤의 비창을 연주하는 영상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다. 그 허름한 모습에 시선이 쏠리다가도 다시금 하얀 벽 위를 수놓은 황금빛 물결을 보게 된다.


벽 위에 아련하게 그려져 있는 여인들은 한 줄을 이뤄 어딘가로 흘러간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는 강물처럼 그 흐름이 자연스럽다. 여인의 물줄기는 황금빛 갑옷을 입은 기사에게 닿는다. 기사 옆에는 무언가를 간청하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기사는 한 손에 칼을 쥔 채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모든 인간적인 감정을 극복한 것 같은 모습, 초인이나 영웅을 연상케 한다.


벽화 바로 아래에는 작은 스크린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허름한 차림의 거리 연주자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음악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황금빛 갑옷을 입은 기사와 허름한 차림의 거리 연주자는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예술로 하나가 된다. 인간적인 아픔과 고난을 극복한 진정한 예술가의 표상. 황금빛 갑옷을 입은 기사는 베토벤이자 거리 연주자이자 클림트였다.

베토벤 프리즈의 세 번째 벽화. /출처 art-klimt.com

여행을 시작한 지 5일째에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다. 예술의 도시 빈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한 때 세계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만큼, 빈의 미술관과 박물관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술작품이 있었다. 수많은 음악가의 고향이었고, 인간 내면의 문을 열어젖힌 프로이트의 고향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에너지가 넘치는 부다페스트와 달리 빈은 고요한 도시였다. 사람들은 과거의 영광을 미술관 안에 묻어놓고 조용히 현재를 살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실망도 잠깐 뿐이었다. 빈의 영광은 미술관 안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제체시온(secession)은 클림트가 이끌었던 빈 분리파의 본거지였다. 클림트는 자신을 따르는 일련의 예술가들을 이끌고 오스트리아 조형 예술가 연맹을 만들었다. 이들은 오스트리아 예술가 조합과의 분리를 선언했다. 빈을 지배하고 있던 전통적인 예술 흐름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클림트는 1회 분리주의 전시회의 포스터를 직접 만들었는데, 이 포스터에는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가 그려져 있다. 미노타우로스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습, 테세우스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해 나선 자신들이었다.

제체시온의 모습. 건물의 상징인 황금빛 돔 장식이 두드러진다.
제체시온 건물의 구조와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빈 분리주의 운동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건축가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는 분리주의 예술의 전시를 위해 제체시온을 만들었다. 제체시온의 상징은 건물 위를 장식하는 금색 월계수 이파리다. 이 독특한 돔 장식 덕분에 제체시온은 지금도 빈의 다른 건물들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처음 제체시온이 만들어졌을 때 이 돔 장식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통과의 단절을 표방한 분리주의 예술의 상징으로 이보다 더 눈에 띄는 상징물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화려한 돔 장식을 올려다보면서 제체시온에 들어가면, 입구에서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잡게 된다.


제체시온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건축물이다. 하지만 지하 전시실의 <베토벤 프리즈>에 비할 바는 아니다. 분리파는 1902년 제체시온에서 베토벤 전시회를 개최했다.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 조각상>을 기리기 위한 전시였다. 클림트는 베토벤을 위대한 예술가의 표본으로 봤다. 장애를 극복하고 음악의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린 베토벤은 클림트가 추구한 '예술을 통한 인간 사회의 구원'을 가장 잘 구현한 예술가였다. 베토벤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클림트가 지하 전시실에 그린 베토벤 프리즈였다.

베토벤 전시회 당시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 조각상. /출처 제체시온

클림트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모티브로 전시실 3면에 벽화를 그렸다. 첫 번째 벽면에는 황금빛 갑옷을 입은 기사가 중심을 이룬다. 전시실 정면의 두 번째 벽에서는 거대한 고릴라가 관람객들을 응시하고 있다. 거대한 고릴라 옆에는 음부를 드러낸 세 여인이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고, 반대쪽에는 살찐 여성과 고통에 시름하는 여성이 그려져 있다. 양쪽 벽화와 달리 중앙의 두 번째 벽화는 짙고 어두운 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조금의 빈틈도 없는 벽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갑갑해진다. 고릴라와 세 여인은 각각 그리스 신화의 티포에우스와 고르곤을 표현한 것이다. 빈틈없는 악과 죄의 상징이다.


이 치열한 어둠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예술이다. 세 번째 벽화에는 류트를 들고 선 여인이 등장한다. 빈틈없는 어둠에서 탈출한 시선은 그녀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는다. 그녀가 서 있는 방향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면 합창하는 천사들과 황금빛에 둘러 싸인 연인의 포옹 장면으로 이어진다. 죄와 악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예술이다.

베토벤 프리즈의 절정인 포옹 장면. /출처 art-klimt.com

베토벤은 실러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교향곡 <합창>을 완성했다. 클림트는 합창에서 영감을 얻어 그의 대표작인 <베토벤 프리즈>를 그렸다. 시는 음악이 되고, 음악은 미술이 된다. 시와 음악, 조형을 통합한 총체적인 예술을 창조하고자 했던 클림트의 열망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구현한 작품은 없다. 


작은 지하 전시실 안에 예술이 살아 있다. 전시실 중앙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벽화를 바라보고 베토벤의 음악을 들었다. 클림트의 또 다른 작품인 <다나에>가 생각났다. 황금빛 비로 변신한 제우스와 사랑을 나누는 다나에의 황홀경이 떠올랐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피할 수 없다. 그 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황홀경에 빠진 다나에처럼, 제체시온의 지하 전시실에서 베토벤과 클림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

제체시온을 방문하기 전까지 나는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음악이나 미술은 문학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예술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소설가나 시인이 인간 본성을 찾아낸다면, 음악이나 미술은 그보다는 부차적인 것들에 집중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제체시온의 지하 전시실에서 이런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시와 음악, 미술, 조형, 건축, 모든 예술은 하나의 흐름이었다. 


제체시온에서는 베토벤 프리즈 외에 다양한 특별전도 진행 중이었다. 루츠 바커(Lutz Bacher)의 조형물이나 다이크 블레어(Dike Blair)의 회화 작품이 제체시온 1층과 2층 전시실에서 전시되고 있었다. 모든 예술을 통합하는 총체적인 예술을 구현하고자 했던 클림트의 열정은 사라지지 않고 제체시온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루츠 바커의 'More Than This'. 조형물과 회화, 그리고 전시관 밖으로 연결되는 문 밖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이크 블레어의 'Floors/Doors/Windows/Walls'.

제체시온 http://www.secession.at/en

art-klimt http://art-klimt.com/


프롤로그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용기가 아닌 동기

① 부다페스트 밤의 풍경

야경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빛이 아닌 어둠이다

② 부다페스트 키슈피파 레스토랑

글루미 선데이의 선율을 따라

③ 부다페스트 테러하우스

헝가리에게 히틀러와 스탈린은 현재진행형이다

④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

삶은 죽음을 향한 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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