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빈 벨베데레 미술관
빈에 도착하자마자 벨베데레 궁전으로 향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벨베데레 궁전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빈 중앙역을 지나자 멀지 않은 곳에 벨베데레 궁전이 나타났다. 하늘은 구름을 붙잡아 두기만 할 뿐 비는 내리지 않았다. 벨베데레는 이탈리아 말로 전망이 좋다는 뜻이지만, 그 유명한 궁전 정원도 흐린 날씨 탓에 생기가 없었다.
표를 끊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궁전의 연회장이었던 만큼 내부 장식은 화려했다. 홀 하나하나 화려한 장식과 벽화가 가득했다. 1층에 전시된 고대의 조각상들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화려한 장식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고대 조각상들이 어쩐지 처연하게 느껴졌다. 고향을 떠나 먼 곳을 여행하는 사람과 조각상의 처지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감상에 젖어 1층 전시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서둘러 2층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고대하던 순간 중 하나였다. 클림트와 에곤 실레, 코코슈카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책에 실린 그림이나 전자화된 이미지는 수도 없이 접했지만, 이들의 진품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진품에는 책이나 모니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없는 예술가의 숨결, 손길이 묻어 있다.
적막했던 1층 전시실과 달리 2층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평일 오후 시간이었지만, 단체 관람을 온 학생들과 여행객, 노부부들이 전시실 곳곳에서 그림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 세기말의 그림이 있었다.
'즐거운 묵시록'. 19세기 말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였던 빈의 분위기를 한 마디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제국은 위기에 빠졌지만, 제국의 수도는 향락에 빠졌다. "제국이 지옥의 어귀에서 왈츠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제국의 몰락을 오감으로 느끼며 빈의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언어로 세기말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 명의 예술가, 클림트와 에곤 실레와 코코슈카가 있었다.
코코슈카의 그림들이 제일 먼저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젊은 야수' 코코슈카의 그림이 전시실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리파의 정신적 지주였던 몰 카를의 초상화가 한 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시종일관 어두운 색채로 가득한 그림 속에서 몰 카를은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과 빗어 넘긴 회색빛 머리카락은 어두운 배경에서 몰 카를을 지켜주고 있었다. 단호함이었다. 코코슈카가 그린 몰 카를은 온몸이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거칠게 이어지는 붓놀림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다 보면 나까지도 혼돈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아이를 안고 있는 부모를 그린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노쇠한 예술가인 몰 카를과 달리 그림 속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코코슈카는 아이를 아이대로 그리기를 거부했다. 부모의 손에 안긴 아이는 그 손길을 편안해하지도, 순순히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붉은 배경에 둘러싸인 아이의 모습은 작은 몸집을 제외하면 아이라고 볼 수 없었다. 정면을 응시하는 아이의 눈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자신을 그리는 코코슈카를 향하는 것인지, 자신을 바라보는 관람객을 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의 정체를 우리도 모르듯이, 이 작은 아이도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의 정체를 모르는 듯했다.
에곤 실레는 코코슈카 바로 옆에 있었다. 코코슈카의 그림을 전시한 전시실을 나서자 에곤 실레의 그림으로 가득 찬 전시실이 나왔다. 에곤 실레는 코코슈카와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출판업자 에두아르트 코스마크의 초상>과 <가족>을 한참 바라봤다. 코코슈카의 그림에서 느껴졌던 긴장감이 에곤 실레의 그림에서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긴장감의 원천이 달랐다. 코코슈카의 불안감이 삶을 향하고 있다면, 에곤 실레의 불안감은 삶이 아닌 죽음을 향한 것 같았다.
<가족>은 전시실에 있던 다른 그림들과는 조금 달랐다. 팽팽하던 줄이 풀려버린 느낌이었다. 나른하고, 따뜻했다. 어두운 배경은 한 가족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새의 둥지. 둥지에서 알을 품은 어미새의 모습 같았다. 그로테스크한 에곤 실레의 다른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에곤 실레는 스물여덟의 나이로 죽었다. 그가 죽기 사흘 전에 그의 아내, 임신 육 개월이던 아내도 죽었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스페인 독감이었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일평생 변화한다. 베토벤의 음악이 귓병을 전후로 달라진 것처럼, 클림트의 그림이 몇 개의 시기로 나눠지는 것처럼. 에곤 실레의 30대와 40대, 50대는 어땠을까. 그가 스페인 독감의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인간 내면을 바라보는 또 다른 현미경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코코슈카와 에곤 실레의 전시실은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클림트의 그림을 보다가도 발걸음을 돌려 에곤 실레와 코코슈카를 보러 왔다. 세기말의 불안감, 제국의 몰락은 반복된다. 사람들은 이들의 그림에서 자신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징후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 이들의 그림은 화려한 벨베데레 궁전 내부 장식보다는 창 밖의 흐린 하늘을 닮아 있었다.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미술관 http://www.belvedere.at/bel_en
프롤로그
① 부다페스트 밤의 풍경
② 부다페스트 키슈피파 레스토랑
③ 부다페스트 테러하우스
④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
⑤ 빈 제체시온 클림트 <베토벤 프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