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 후 폐장

여긴 지금 어딘가? 싶은 나날들

by 빛나는 지금

침대라는 엄청 큰 부피의 물건을 팔면서 나는 신선한 깨달음을 얻었다.

물건을 가지는 기쁨도 있지만 물건을 가지지 않는 기쁨도 크다는 것을. 가지고 싶어서 손에 넣었으나 쥐고 있는 손을 푸니 의외로 너무나 홀가분하고 편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때 나는 안타깝게도 사실 미니멀라이프의 정의도, 그 방향성도 몰랐기에 그 깨달음은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신생아 육아와 함께 시작된 나의 두 번째 육아휴직은 가구와 짐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고 쟁여 넣은 짐을 풀었다가 다시 욱여넣는 지난한 과정의 도돌이표였다.


둘째가 커가면서 그나마 여유가 있었던 거실공간은 놀이방매트를 시작으로 모빌, 국민 아기 체육관, 각종 솜인형들이 하나, 둘 차지하기 시작했다.


두 형제 모두 주로 거실에 나와 놀게 되면서 처음 놀이방으로 만들어주었던 방은 점점 방치되게 되었다. 둘째가 자는 틈을 타서 첫째의 놀이방 물건을 모두 거실로 옮겼고 거실은 소파와 긴 책장 두 개, 장난감과 미술놀이 도구로 전 벽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식탁 위는 미술놀이 도구가 늘 자리하고 있었고 거실 바닥은 솜인형과 책, 그리고 둘째가 커가는 속도에 맞추어서 매트 위에 다시 깔개를 깔고 그 주변은 두꺼운 쿠션으로 두르면서 거실 바닥과 벽의 원래 모습이 가물가물해졌다.


책을 넣을 곳이 없으면 바구니를 더 구매했고 크레용이 나뒹군다 싶으면 수납함을 바닥에 더 놔두었다. 동생이 기어서 자꾸 자기가 종이로 만든 작품을 건드린다고 징징대는 첫째의 말에 당장 범퍼쿠션으로 두 형제의 영역을 구분해 주었다. 식탁 위에 자꾸 쌓여가는 스케치북과 책들을 보고는 다급하게 수납장을 비좁은 구석에 억지로 끼워 넣고 그 수납서랍에 일단 되는대로 물건들을 넣었다. 식탁의 맨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으나 그것도 잠시, 밤이 되어 아이들을 재우고 나오면 식탁 위도, 수납장 서랍안도 물건들로 어지러웠고 왠지 "이제 쉴려구? 아니지... 정리해야지!" 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황급히 닫아버렸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면 주변에서 주는 물건들이 많다. 전면책장 2개에, 한쪽 벽을 다 가리는 자석칠판, 수백 권의 전집과 가득 쌓인 보드게임, 혼자 들기 버거운 무게의 레고블록 상자, 엄마표 놀이의 대명사인 모 회사의 놀이상자는 단단한 나무박스들이었는데 걸을 때 발가락을 한번 부딪히면서 쏙 눈물을 뺀 후, 곧이어 신발장안에 차곡차곡 쟁여넣었다. 육아하면서 밖에서 운동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받아온 운동기구는 가급적 옷을 걸어두지 않으려 했으나 어김없이 빨랫대로 변해 있곤 했다.


둘째가 기면서 친정엄마가 사주신 화분의 흙을 자꾸 손가락을 넣어 헤집는 바람에 또 자는 틈을 타 낑낑거리며 내 키에 닿을 듯한 화분들을 거실 이곳저곳에 옮겨보길 수십 번, 급기야 베란다로 보냈더니 겨울을 못 이기고 바깥쪽부터 잎이 누레지더니 생기를 점차 잃어갔다. 하지만 그 식물들까지 손볼 여유가 없었다.


싱크대 위에는 젖병과 함께 전기포트와 젖병소독기, 요구르트 제조기, 제빵기 등 소형가전들이 공간마다 올려져 있어 그 가전을 쓰기 전에 필요한 작업을 할 공간이 없어 오히려 쓸 수가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리고 옷장. 이사한 집의 붙박이장은 크겠다, 몇 년 사이에 두어 차례의 이사가 이어졌으니 입을 옷도 마땅찮을 것이라 여기셨는지 이래 저래 건네준 옷들이 많았다. 남편 몫의 전용옷장을 따로 두었으나 받은 옷들을 걸고 나니 다시 빼기가 힘들 정도로 빼곡하게 옷이 들어찼다. 아이들 옷도, 내 옷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근을 하지 않는 상태였으니 그런 많은 옷들이 대부분 입지 않은 상태로 옷장 바닥에 쌓여있거나 옷걸이에 두서없이 걸려있었다.


정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득 찬 집을 둘러보며 답답함을 느낄 때마다 아이들이 자는 틈을 이용하여 가구도 옮겨보고 짐도 옮겨서 새 자리를 정해주기도했다. 하지만 여기서 저리로 옮긴 짐은 다시 그 자리에서 번식을 하며 주변을 어지르고 다른 물건들을 불러들이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였다.


그렇게 짐을 옮기고, 어지러워진다 싶으면 또 옮기면서 이 답답함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시간은 흘러 복직할 시기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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