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성장애 환자의 고군분투 직업 탐방기 2탄
4. 한방병원 검사실 간호사
한방병원은 또 다른 곳이었다. 내가 배워서 써먹은 모든 것들은 ‘양의학’이었다. 물론 내가 침놓고 한약 지어주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워낙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없는 나였기에, 더더욱 나와 맞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나를 어마어마하게 예뻐해 주시던 팀장님, 같은 부서 간호사 선생님, 간호조무사 선생님의 사랑은, 내가 ‘나’라는 존재를 조금씩 더 예쁘게 봐줄 수 있게끔 만들어주셨다. 이 병원에서 나는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정말로 이루 다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감사한 분들이다.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한 나는 또다시 환승을 시도한다.
5. 요양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가장 긴 시간을 몸담은 나의 일터. 이전 한방병원에서도 애정을 듬뿍 받았지만, 이곳 요양병원에서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감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게끔, 나를 믿어주시고, 맡겨주시고, 사랑을 주셨다.
적다 보니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직장에서 사랑받은 경험을 나열하고 있다니. 나에게 직장이란, 물론 월급 받기 위해 내 맡은 바를 다하여야만 하는, 책임감을 갖고 출퇴근하는 곳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더불어 자아실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내가 얼마큼 인정받았는가 또한 별표 다섯 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급성기 병원과는 달리, 요양병원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의 끝자락을 저무는 노을처럼 바라보게 되는 곳이었다. 노을은 때론 아름답기도, 격정적이기도, 쓸쓸하기도 했다. 인간의 생과 사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근무를 하던 중에, 많은 이들의 축복과 함께 결혼을 하였다. 희와 비는 한 끗 차이이던가.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만성 B형 간염’이라는 질병을 갑작스레 발견하게 되었으며, 더 이상의 교대 근무는 내 질병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을 내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는 3년 4개월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요양병원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된다.
6. 건강검진센터 예약관리 회사
요양병원을 그만두고 난 직후에 ‘우울증’을 마주하였으며, 곧바로 ‘양극성 장애’로 개명하는 시기를 겪는다. 첫 번째 입퇴원을 경험하고, 네 개의 계절을 회복의 시간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자, 이제 다시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되어볼까나!
마침 동생이 다니던 회사의 건강 검진 예약 관리 부서에서 간호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부푼 마음으로 입사를 하게 된다. 병원이 아닌 일반 회사라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으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업무량에 또다시 고비를 맞이하게 된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넘어질 것 같았다. ‘완전히 꼬꾸라지기 전에 이 달리기를 멈춰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이곳에서의 한 달 조금 넘는 시간들을 정리하기로 선택한다.
7. 대학교 조교
가을, 겨울 지나 다시 봄이 되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봄날의 새싹처럼 땅을 뚫고 돋아나기 시작했다. 구직 활동 중,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대학교의 ‘간호학과 조교 모집’ 공고를 발견하고, 조교라는 새로운 직군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파릇파릇한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내 마음까지 푸르게 만들어 직업 만족도가 높을... 줄 알았으나! 이번에는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 3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