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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Sep 14. 2021

치킨 한마리 못 사먹는 삶을 살고 싶어?

워킹맘 이야기

#1 학군지로 이사를 가다.

층간소음 문제로 우리 집은 친정 근처를 떠나 멀리멀리 이사를 했다.

https://brunch.co.kr/@viva-la-vida/79

맞벌이 부부인지라, 지하철 역 주변으로만 매물을 봤었다.

정말 말 그대로 네이버 부동산 어플에서 지역을 휙휙 올리며 '역+가격'만 봤다.

가격대 맞는 곳을 몇 군데 추린 후 네이버에 기재된 부동산에 연락해서 역 주변 몇 군데를 둘러보는데,

중개인 아주머니가, 여기(역 근처) 말고 더 안쪽에 괜찮은 매물이 있으니 그걸 보라고 하셨다.


"아이들도 어린데..., 역이 아니라 학원이 가까워야지."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부동산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서울 토박이긴 하나, 학군지와 무관한 동네에서 쭉 자라, 학군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나는 이 동네가 학군지인지도 몰랐다.

남편은 그래도 알만한 학군지에서 자랐으나, 그 역시 아파트 많고, 학원이 동네에 많았다. 정도로만 기억하는 걸로 봐서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중개인 아주머니의 적극적인 권유로 우리 가족은 학군지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머니 왈,

"지금이야 저 아파트가 좋아 보이겠지만, 여기가 훨씬 나아요. 살아보면 알아."




#2 치킨 한마리 못 사 먹는 삶을 살고 싶어?!

이사를 하고 나서 몇 개월 안 지난 어느 날이었다.

퇴근을 하는데,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서는,

"엄마, 치킨 한마리 못 사 먹는 삶이 어떤 삶이야?"라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옆집 아줌마가 옆집 누나를 혼내면서 치킨 한마디 못 사 먹는 삶을 살고 싶어?!"라고 했어.

- 구조상 큰 아이방이 옆집 거실과 마주 보는 위치였는데, 양쪽에서 창을 열면 대화 소리가 들렸다.


당시 둘째는 금요일은 friday니까 fried chicken을 먹어야 된다는 말로 온 가족을 설득해서, 우리는 금요일 저녁이면 노*치킨집에서 치킨을 먹었었다.


치킨을 애정 하는 둘째 입장에서는 치킨을 못 먹는 삶을 산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3 학군지의 일상 ; 엘베에서도 개념을 공부한다.

아침 8시쯤 엘리베이터를 타면 학교 이름이 쓰인 가방을 멘 아이들이 보인다.

아파트 입구에는 사립초 등교버스만 대여섯 대다.

죄다 사립을 보내는 것 같다.


처음 여기를 왔을 때, 둘째는

"어떻게 놀이터에서 딱지 치는 아이들도 없어?"라고 하더니

나를 활용? 하여 본인의 딱지를 중고 거래하고 2만 원을 챙겼다.

정말이지 놀이터에서 노는 초등학생들이 없었다.

이전에 살 던 곳에서는 9시까지 놀이터에 아이들이 바글바글 해서 경비원 아저씨가 그만 들어가라고 안내방송을 했었는데.


가끔 마주치는 이웃 중에서는 이동 중에도 아이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엄마도 있다.

"OO아, 네가 이해하고 있는 걸 설명해볼래?"

"그렇구나!, OO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이런 면도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신기했다. 원래 다들 저렇게 하는 건가?


아이와 같은 책을 보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건 좋아 보이긴 했지만,

나는 그 시간에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최신화 웹소설을 보는 게 더 행복할 것 같은데...




#4 알고 보니 엄친아 옆집 누나

큰 아이도 옆집 누나가 다니는 중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어떤 학교인가 싶어서 검색을 하다가, 유튜브에서 옆집 누나로 보이는 아이가 교내에서 발표를 하는 영상을 발견했다.

그 옆집 누나는 큰 아이 학교 홈페이지에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얼굴이 나와있었다.

소위 엄친아였던 것이다.


엄마 친구 딸 같은 캐릭터의 아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치킨"이라는 채찍,

정확하게 말해서는 "치킨을 박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는 채찍이 필요한 것일까?

사실 내가 보기에 그 말은 협박에 가깝다.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되 현실의 무게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날 "치킨"은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웠다.




#5 엄마는 아들내미, 첵*초코 하나 못 사주는 삶을 살고 싶어?

어제 저녁 게임을 엄마 아빠가 자라고 10번쯤 말했을 때쯤, 중단한 둘째가,

침대에 벌렁 눕더니,

"나 첵*초코 먹고 싶어."라고 하길래

"너 그거 사주면 밥 안 먹잖아. 그냥 양치질이나 하고 자!"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 녀석

"엄마는 아들내미, 첵*초코 하나 못 사주는 삶을 살고 싶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난 네가 지금보다 더 살찔까 봐 그런 거야!'


'치킨 한 마리 못 사 먹는 삶'이라는 표현을 공포에 가깝게 받아들이던 초2는 이제 초5가 되어 그 말로 농담으로 한다. 상처를 잘 극복? 했나 보다.


#6 조작적 조건화와 치킨의 박탈

공부 잘하면 당연히 좋지.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공부에 대한 보상이 유독 큰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게 아이의 자존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왕이면 학군지에 이사 왔으니, 돼지 엄마까지는 못되더라도 전처럼 아이들 공부에 너무 무심하지는 말아야겠다 다짐한다.

그렇지만 "치킨"은 정말 아니다.


대학 시절 교육학을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긍정적인 행동이 자주 나타나게 할 때는 강화를 시킨다.

정적 강화 → 이번에 수학 90점 맞으면 노트북 사줄게!

부적 강화 → 옆 집 말소리 다 들리니 공부하는 데 불편하겠다. 방 바꿔줄게!


부정적인 행동을 줄일 때는 약화를 시킨다.

부적 약화(박탈성 벌) → 자꾸 게임만 하면 금요일마다 먹는 치킨데이 이제 안 할 거야!

정적 약화(벌) → 규칙을 어겼을 때 청소!


옆집 엄마는 조작적 조건화 중 부적 약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안하면 치킨을 못 사먹는 삶을 살게 된다.'

'자기충족적 예언' 내지는 '암시'까지 노린 고도의 심리적 전술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치킨을 박탈하는 건 아이로 하여금,

삶을 "치킨을 사 먹을 수 있는 삶", "치킨을 사 먹을 수 없는 삶"으로 구분 짓게 한다.

세상은 충분히 물질적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돈)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치킨으로 구분 짓는 삶'은 다른 고귀한 가치들이 있다는 점을 무시하게 만든다.


더 심각해지자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삼시 세끼가 아닌 조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치킨"은

보상의 상징으로, 아이로 하여금 "내가 치킨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자격지심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이건 아이의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치킨을 못 먹는다고 해서 내가 존중받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기본적으로 아이를 동물로 보는, 생각하는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처사이다.

상과 벌을 주더라도, 기왕이면 아이를 존중하는 방식의 상과 벌을 주었으면 한다.

스스로 선택하게 끔 한다던가, 아이들과 기준을 정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 물론 나는 '치킨'을 박탈하지도 않고 아이들과 기준을 정하지도 않았다. 그냥 놔두고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는 치킨은 내가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것,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에 일주일을 마무리하면서 가족들과 먹는 특별식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7 "치킨" 농담이 무서운 엄마

둘째의 농담에 나름의 충격을 받아, 점심에 큰 아이 밥을 차리고 마트로 달려가 초*첵스를 구입했다.

그 "치킨"에 나도 어지간히 데었나 보다.


 오후 수업을 다녀온 둘째를 보자마자,

"엄마, 초*첵스 사 왔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둘째가 나를 부처님 손바닥 손오공 마냥 데리고 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치킨 한마리 못사먹는 삶을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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