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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Nov 18. 2020

A - Abflug (이륙)

다시 돌아오게 된 독일



EP. 01

A - Abflug (이륙)


[출국 세 시간 전]

 2014년 겨울 인천 국제공항, 나는 체크인과 출국심사를 마치고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홀로 게이트 앞에 앉아있었다. 나의 두 손에는 여권과 비행기 티켓이 쥐어져 있었고 오른편에는 작은 가방이 놓여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독일로 가는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도 출국 전까지 나에겐 이 모든 게 꿈의 일부분 같이 느껴졌다. ‘독일행’은 마음속의 시야가 어두운 날이면 잠자리 머리맡에 늘 찾아오던 간절한 꿈이었다. 하지만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선 이후에는 한순간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왔다. 여행가방 속 무언가를 빠트릴까 걱정은 했어도, 떠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공항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 강아지가 함께 배웅을 나왔다. 체크인을 마친 후 부모님은 한 끼라도 한식을 더 먹이고자 나의 등을 떠밀며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몇 분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 그러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별 말없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흘깃 바라본 부모님의 등은 어쩐지 몇 달 새 조금 더 굽은 듯 보였다. 밥을 먹으면서도 어머니는 종종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았고, 아버지는 자꾸만 빠트린 것이 없는지 물었다. 아버지에게 여행용 캐리어와 배낭을 간신히 건네받은 것은 출국장 앞에 도착해서였다. 아버지는 공항에 도착한 후로부터 한시도 나의 짐에서 손을 놓지 않으려 하셨기 때문이다. 넘겨받은 가방의 무게가 새삼 묵직하게 나의 두 어깨를 눌러왔다. 부모님과 짧게 포옹을 하고 마지막으로는 허리를 숙여 강아지와 작별인사를 했다. 강아지는 꼭 무언가 아는 것처럼 폭 하며 한숨을 내 쉬고는 내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출국장 안으로 들어서는 몇 미터의 길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앞으로 몇 걸음을 내딛다 돌아본 그곳에는 나와 같은 표정을 지은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두 분은 마지막으로 딸내미의 얼굴을 한번 더 볼 수 있을까 싶어 출국장 유리문 사이로 까치발을 들고 계셨다. 시야에선 부모님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져 갔고 이내 닫히는 자동문이 양 옆에서 그들의 얼굴을 지워버렸다.



[출국 삼일 전]

 2013년 가을 독일에서 돌아온 뒤로 벌써 네 번의 계절이 지나갔고 그동안 나는 독일에서 필요한 것과 필요할 수도 있는 것 모두를 한국을 떠나기 전에 마련해야 했다. 봄에는 대외활동을 하고 여름에는 졸업 작품을 준비했다. 방학 동안에는 회사에서 인턴십을 수료했다. 가을에는 졸업전시회를 마무리하며 독일어 학원에 다녔다. 졸업전시회를 마치고 싸늘한 날씨에 겨울잠바를 꺼내야 할 쯤엔 곧바로 교외의 운전면허 학원을 찾았다. 시험을 등록할 때 본 핸드폰 속 달력에는 출국 일까지 두 달 정도가 남아있다는 알림이 떠있었다. 새벽마다 집 앞으로 찾아오는 운전면허장의 봉고차를 부지런히 타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두 손에는 운전면허증이 들려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기뻐할 새도 없이 가방을 싸야만 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이민가방을 꺼내 들었다. 지난 네 번의 계절만큼의 먼지가 소복이 쌓인 가방에는 여전히 일 년 전의 수화물 택이 달려 있었다.


이미 교환학생을 통해 독일을 6개월 동안 경험한 터라 짐을 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짐 정리를 마친 후 가방을 방 한편에 세워두고는 고개를 들어 방 안을 둘러보았다. 십오 년간 지냈던 방이 그날따라 평소보다 작게 느껴졌다. 이제 곧 주인을 잃을 책상 위에는 내가 독일에서 머물게 될 곳의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놓았다. 부모님이 그 주소와 연락처를 보고 독일로 찾아오지는 못해도, 그저 딸아이가 어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시면 조금 근심이 덜어질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독일에 가겠다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걱정을 제법 하셨다. '남자 친구만 생각하고 무턱대고 갔다가 상처 받고 돌아오면 어떡하나', '독일에 가봤다지만 외국 생활이 낯설고 힘들지는 않을까' 하며 엄마는 수시로 한숨을 쉬었다. 한숨 뒤에 나오는 엄마의 맺음말은 항상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라'였다. 객기 하나만으로 객지에 가서 살겠다는 딸이 부모님에게는 근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분은 나를 이해해 주셨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해 주셨다.



[출국하는 비행기 안]

 비행기 안의 전등이 꺼졌다. 좌석 앞에 놓인 스크린에는 비행기가 광활한 러시아 대륙을 지나가는 그림이 떠있었다. 초록색으로 가득한 그림과 달리 타원 모양의 창밖에는 석양이 진 구름 아래 광활한 산맥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내려다보며 둥지를 떠나 먼 길을 이동하는 철새들을 생각했다. 계절에 따라 먹이와 번식할 곳을 찾아 이동하는 새들을 철새라고 한다. 이와 반대로 특정 지역에서만 생활하고 번식하는 새들은 텃새라 불린다. 떠나지 않는 새들이다. 하지만 종종 정해진 지역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는 새들도 있다. 길을 잃은 새들이다. 이들은 미조(迷鳥, 길 잃은 새)라고 불린다. 나는 이제 둥지를 떠났으니 텃새는 아닐 테지. 그럼 철새가 되어 다시 돌아가지 않는 한 미조가 되어버리는 걸까? 아니면 새로 가는 그곳에서 둥지를 틀게 될까?


비행기 창문을 닫고 눈을 감았다. "일단 떠나고 보면 알겠지"하며,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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