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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Dec 14. 2020

D - Durchhaltevermögen (인내)

독일어를 배우기 위한 여정

EP. 04

D -  Durchhaltevermögen (인내)


 어릴 적 나는 유독 모델하우스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별난 아이였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우리 가족이 살던 동네는 정부의 주도하에 건설된 신도시였고, 건설 후 십 년이 다돼가던 때라 동네에는 이곳저곳 빼곡히 아파트와 상가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시내를 벗어나면 곳곳에는 아직 도시개발이 한창이었다. 주말이면 부모님은 오빠와 나를 데리고 함께 종종 모델하우스를 구경하셨다. 집에서는 볼 수 없던 깨끗하고 단정하게 놓인 하얀색 슬리퍼를 신고 안으로 들어설 때면, 마치 성에 사는 공주님이 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모든 것이 새것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동화 속 성보다 어쩌면 더 현실성이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린 나는 모델하우스를 직접 가는 것뿐만 아니라, 주택 구조가 그려진 전단지나 책자도 좋아했다. 모델하우스 방문 후 부모님이 한가득 책자를 받아오시면 나는 늘 그것을 받아, 혼자 방 안에서 집의 도면을 따라 그리고는 했다. 이쪽에는 창문을, 저쪽에는 문을 놓고 소파는 빛이 잘 드는 곳에 들여놔야지하며 사각형이 이어 그려진 도면 위의 나만의 공간을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새로 세워지는 건물들에 대한 책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들고는 했다. ‘역세권’이라는 게 무슨 말이지? 지하철역이 근처에 있으니 살기 좋다는 건가? 큰 글씨로 쓰인 것을 보니 굉장히 중요한가 보다. 큰 글씨로 약도까지 첨부해가며 역세권에 위치함을 광고하는 전단지는 초등학교 저학년이 이해하기에는 꽤 어려웠다. 하지만 특정 지형지물 또는 상점이 집 근처에 있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근 이십 년이 지난 현재에는 역세권이라는 말뿐 아니라 다양한 '~세권'들이 등장했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 인접 지역은 '맥세권', '스세권'이라고 불리며, 더해서는 숲 또는 편의점과 가까이에 있다는 '숲세권', '편세권'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세권'이라는 단어는 이제는 노상 특정 지형지물 또는 상점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사는 독일의 도시인 비스바덴은 독일 16개 주의 하나인 헤센(Hessen)에 있다. 서부 독일 지역에 속하는 비스바덴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도시 중 하나로, 로마 시대부터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했는데 서기 800년대의 기록에 따르면 비스바덴(Wiesbaden)의 지명은 Wisibada로 표기되어있는데 이는 '들판 속의 온천'(Das Bad in den Wiesen)을 의미한다. 이 오래된 온천 도시는 19세기 카이저 빌헬름 2세의 여름 휴양지로 이용되면서, 부유한 지주들과 공작들의 방문이 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규모가 큰 회사들이 지어졌다고 한다. 점차 비스바덴 시내에는 극장, 카지노, 미술관 등의 휴양 또는 오락 시설들이 늘어갔고, 20세기 초반에는 이른바 독일에서 가장 많은 억만장자가 사는 도시로 자리 잡아갔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비스바덴의 행정 시스템도 발달되었고 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비스바덴이 헤센주의 주도(Landeshauptstadt)가 되었다. 그야말로 온세권(온천 역세권)의 발전이다.


당시 살던 집에서 어학원을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십오  정도를 나가야 했다. 버스가 비스바덴 시내에 들어서면 20세기 초에 유겐스틸(Jugendstil) 지어진 공동주택이나 후기 로만틱 건축기법으로 지어진 웅장한 교회들이 시내 곳곳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공원이나 언덕 근처에서도 화려한 테라스에 그리스식 동상이 놓인 저택들이 작은 성처럼 모여있는 것을   있었. 특히 비스바덴에서도 가장 비싼 임대료가 책정된다는 빌헬름 거리(Wilhelm Strasse) 조명 가게들과  가게들의 반짝이는 쇼윈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사는 동네가 부자 동네이긴 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유한 도시의 이방인인 나는 온세권의 혜택과는 거리가  처지였다. 심지어 내가 다니던 어학원에서 도보로 고작   거리에 비스바덴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이 있었지만,  번도 이용해  적은 없었다. 20유로 상당의 기본요금에 이것저것 부대 비용까지 합쳐지면 30유로를 훌쩍 넘게 되는 금액은 학생인 나에게 꽤나 부담스러웠고, 정해진 요일의 제한된 시간을 제외하고는 남녀공용으로만 운영된다는 것도 온세권을 누리기에  장벽으로 다가왔다. 어학원을 마치고 화려한 거리를 지나 정작 내가  가던 곳은 ALDI(저렴한 가격대의 상품을 주력으로 하는 독일의 대형 슈퍼마켓)였다. 북적북적한 슈퍼마켓에서 무사히 장을 보고 나올 때면 부자 동네에 부자들만 사는  아니니까 하며 한국의 대중목욕탕을 그리워하고는 했다.


   



물론 당시 나에게 중요한 것은 맥세권도 스세권도 온세권도 아닌, '어세권'이었다. 나에겐 스타벅스도 맥도널드도 온천도 아닌 좋은 어학원이 절실했었다. 비스바덴 시내에도 몇몇 독일어 어학원이 있었지만 앞으로 내가 배워야  독일어 B2 과정 수업을 운영하는 어학원은  하나뿐이었 게다가 그것마저도 부족한 학생 수로 인해 예정된 일정보다   늦게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독일에 입국한지는 이미 5개월 정도가 지난 상태였고, 어학 비자의 만료는 반년이 조금 넘게 남아있었다. 늦어도 앞으로  개월 안에 독일어 B2 과정을 수료하고 DSH( Deutsche Sprachprüfung für den Hochschulzugang - 대학 입학을 위한 독일어 능력 시험) 시험 준비반을 운영하는 대학교에 등록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교 입학 신청도 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비스바덴에서 가장 가깝고  도시이자 다양한 어학원들이 있는 프랑크푸르트  마인(Frankfurt am Main, 이후 '프랑크푸르트' 표기)으로 눈을 돌려야만 했다. 프랑크푸르트와 비스바덴  40km 거리를 두고 있다. 비스바덴 중앙역에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까지 지역 고속열차(Regional-Bahn)로는 삼십 , 일반 열차(S-Bahn)로는 50 분이 걸린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서 십오 분간을   , 도보로 다시 십오 분을  걸어야 어학원에 도착한다. 그리하여, 집을 나서 Z 어학원에 도착할 때까지는 꼬박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게다가 독일의 일반 열차는 반복되는 연착으로 독일인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았는데, 기차가 5분에서 10 정도 연착되는 날에 승객들은 오히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다니던 어학원이나 비스바덴 어학원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한 수업료, 오전과 오후 그리고 주말반까지 운영하는 것과 마지막으로 모든 단계의 독일어 수업이 개설되어 있다는 것이  시간의 험난한 기차를 타고서라도 Z 어학원에 다니게  이유였다. 저렴한 가격에 적당한 시간에 운영되는 시험 준비반은 단기간에 어학시험을 치러야 했던 나에게 하늘에서 떨어진 동아줄같이 느껴졌다.




 기차 역사에서 어학원으로 이어지는 골목은 항상 어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로 붐비었다. 총천연색의 튀르크를 두른 학생, 금발에 킥보드를  학생, 덥수룩한 수염에  손으로 담배를 말아 피우며 걷는 학생  학생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향하는 곳은 같았기에, 수업 시간  어학원으로 이어지는 거리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새로 다니게  독일어 어학원은 3층짜리 건물의 대부분을 사용하는  규모의 어학원이었다. 이곳에서는 A1부터 C2까지 여섯 단계의 독일어에 해당하는 모든 수업을 제공했다. 그중 독일어 B2 단계부터는 주로 직업 교육(Ausbildung)이나 대학교 진학을 하려는 학생들이 많이 배운다. 학과에 따라 다르지만, 대학교에서 외국인 입학 조건으로 주로 독일어 B2 혹은 C1 어학 증명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 입학 신청에 맞추어 독일어 시험을 통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대다수인데, 이것이 Z 어학원에서 B2 C1 단계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학구열이 유독 높은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수업 태도는 지난 비스바덴 어학원과는 확연히 달랐다. 개인 사정으로 숙제를  해오거나 수업에 빠지는 학생들은 종종 있었어도 잡담이나 딴짓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학생들은 대게는 서로 친절했으나 예전에 다녔던 어학원에서 느꼈던 친밀감이나 유대감과는 비교할  없었다. 오히려 학생들은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들에게 선생님보다 먼저 나서 눈총을  정도였다. 그래도 여러 국가에서  학생들이 모여있는지라, 토론은  활발했고 수업은 활기찼다. 서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질문했고 독일어 공부에 있어서 유용한 정보가 있으면 숨기지 않고 나누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어학원을 다니던  시절부터 독일어에 본격적으로 밌어졌다. 독일어 초급 과정을 마치면서 그동안 낯선 언어였던 독일어가 익숙해지점차 독일어로 쓰인 단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독일어로 꿈을 꾸었던 것도  무렵이었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독일어를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다시 독일로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남자친구와 독일어로만 대화하기 시작했고 컴퓨터 핸드폰의 언어처럼 생활에서 접할  있는 언어를 모두 독일어로 설정해 놓았다. 게다가 남자 친구의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있으면 사정이 없는  대부분 참석했다. 대화의 내용을 전부 이해할  없어도 학원이나 교재에서 배울  없는 진짜 독일어를 배울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어가 점차 늘기 시작하면서, 일상생활에서 독일어로 소통하는  있어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더는 빵을 사기 위해  번이고 머릿속에서 독일어 문장을 되뇌지 않아도 되었고, 기차역에서 안내방송을  들어서 전광판을 한참을 쳐다보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잡으려 노력해도 손끝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았던 독일어 단어들과 문장들이, 이제는 자그마한 돌멩이 되어 손에 조금씩 쥐어지는  같았다. 독일에서 어릴  꿈꾸었던  건물에 편리한 시설을 갖춘 동네에  수는 없어도 이곳에서 나의 미래를 지어갈 재료가 되는 돌멩이 말이다.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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