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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Dec 29. 2020

F - Farbe (색, 색채)

독일에서 채워지는 나의 팔레트

EP. 06

F - Farbe (색, 색채)


 독일은 나에게 초록색이다. 교환학생이 끝나고 한국에서도 나는 종종 독일 생각을 했다. 눈을 감고 독일을 떠올리면 그곳에는 초록색의 잔디로 뒤덮인 공원과 푸른색 이끼로 뒤덮인 숲이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면 축축하게 젖은 푸른 흙냄새가 독일 기숙사 창문 너머로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내가 살던 독일 기숙사는 도시 외곽에 있었기에 기숙사에서 나와 오 분 정도 걸으면 건너편에는 다른 도시로 이어지는 들판과 작은 숲이 있었다. 그 숲은 아침 이슬이 맺힐 때가 가장 아름다웠는데 인적 없는 이른 시간에 조용한 숲 안으로 들어서면 낙엽으로 덮인 언덕 위의 잔디와 이름 모를 꽃들 위로 아침 햇살이 비추었다. 이파리가 다 떨어져 앙상해진 나무와 그 위에 자리를 잡은 선명한 초록색 이끼들도 자욱한 안개를 가르고 스며드는 햇살의 은총을 받았다. 그렇게 황금빛 햇살이 대지의 모든 것들을 따듯하게 감싸면 숲은 선명한 초록색으로 깨어났다.


독일의 자연이 담고 있는 초록색은 한국의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초록색과는 미세하면서도 분명하게 다르다. 색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닐 테나, 한국의 초록색은 상쾌하면서도 따듯한 기운을 갖고 있고 독일의 초록색은 선명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있다. 며칠 동안 일기예보가 구름과 안개로 뒤덮이는 날이면 깊이를 알 수 없는 하얀색 하늘 아래에서, 형광색으로 빛나는 독일의 초록색은 몽환적인 인상마저 준다.  




 물론 독일이 당신에게 무슨 색이냐, 하고 물었을 때 그 대답은 질문을 받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색(色)은 사실 굉장히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같은 색을 다르게 보기도 하고 특정 색을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구별하기도 한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동물과 곤충은 각기 세상을 다른 색으로 본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방법으로 색을 보지만,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에게 세상이 어떤 색으로 채워져 있는지는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색을 이용해 세상을 구분하는 것을 좋아한다. 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요즘에도 인간은 아직 기계보다 더 많은 색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마 그게 우리가 색을 사용하기를 좋아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우리는 특정 색을 사용해서 위험을 알리기도 하고, 강조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색으로 신분의 높낮이나 특정 종교적 의미를 함축해 표현하는 것은 물론, 정치적 이유로 특정 색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강제하기도 한다. 미술 작품을 보면서 화가의 색 선택에 감동하기도 하고, 촬영한 사진의 색을 미세하게 조정하느라 몇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매년 그해의 유행을 선도하는 색이 선정되기도 하고, 특정한 색을 갖은 상품을 사기 위해 원래 금액의 두 배가 되는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색은 인간에게 소통의 도구이자, 수단이며 때로는 목적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색은 언어보다 직관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그야말로 소리 없이 강하다. 그런데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상에 적절하지 않은 색을 입혀 규정지을 때도 있다. 그것도 아주 단순하게 말이다. 사람의 피부색은 지구에 사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구별하기 위해 단 세 가지 색만을 쓴다. 흑백 논리는 어떠한가. 세상을 흑과 백으로 둘로만 양분해서 이해하려 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능력을 낭비하는 일이다.  


추상적으로 저마다 갖은 ‘개성’을 비유해서 말하자면, 사람도 저마다의 색이 있다. 물론 사람마다 우리는 모두 아이일 때는 하얀 도화지 같은 상태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저마다의 색을 이미 타고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종이가 무슨 색인지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성장하고 학습하고 경험하면서 여러 가지 색을 묻히게 된다. 누구나 새로운 환경이나 집단에서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환경이 변하면서 나의 주변에 어떤 사람과 사물들이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환경이 변하고, 주변 사람들이 변하면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색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상대방이 갖은 색에 물들기도 하고, 내가 다른 사람을 물들인다고 한다. 바뀐 환경이 그 이유라면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면,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이라는 도화지에 물든 색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된다.




 나 또한 독일에 와서 세계 각국의 학생들과 섞여 수업을 들으니 내가 갖고 있었지만 알아채지 못했던 면들이 두드러져 보이기 시작했다.


성실한 나

그중 하나가 내가 독일에 와서야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었다. 어학원 두 곳에서 대략 반년 동안 독일어 초급과 중급반의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늘 가장 성실한 학생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성실한 학생이었다. 사실 나는 학창 시절에는 수업이 지루해지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교과서 사이에 책을 끼워서 몰래 보던 학생이었다. 크게 다른 친구들을 방해하지는 않았지만, 성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입시를 한다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정작 대학교에 와서는 관심이 있는 수업 이외에는 성적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초중고 교육과 대학교육을 받은 곳은 전 국민의 교육열이 누구보다 넘치는 대한민국이었다. 한국은 입시와 사회의 경쟁이 다른 국가들보다 심한 나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방학 때마다 선행 학습을 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에 있는 학원에 다녀야 했다. 고등학교 때는 입시 미술을 배우면서 다른 입시생들과 끊임없이 경쟁해야 했다. 그리고 그 경쟁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장 최고조에 달했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학교 수업을 마치고 네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야 했는데 그날 그린 그림들은 수업이 끝날 즈음에 벽에 걸린다. 선생님이 빨간색 펜을 들고 그림의 점수를 채점하면 점수대로 그룹이 나뉘기도 했다. 내가 그 일 년 동안 그린 모든 그림의 오른쪽 모서리에는 빨간색으로 점수가 쓰여있다. 대학교에 와보니,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내 예상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질릴 정도로 많은 디자인 학부의 과제를 빠짐없이 다 해오는 것도 모자라 나보다 더 성실하게 잘 해왔다. 게다가 지각을 하거나 수업에 빠지면 바로 학점이 깎이는 한국의 대학 시스템은 성인이 되어서도 성실함을 반강제적으로 잊지 않게 해 주었다. 독일에서는 수업에 빠지지 않고 숙제만 잘해와도 성실한 학생이 되었다. 물론 나보다 더 성실하고 부지런한 학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외국인 학생들은 지각과 결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고, 숙제에 대한 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 평균 정도의 근면함이 이곳에서는 훌륭해 보이는 것이었다.


단순한 생활을 좋아하는 나

한국에서처럼 하루를 인턴십과 학교 수업, 대외활동 등으로 쪼개 써야 할 필요도 없이 독일에서는 온전히 독일어 공부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게다가 마트나 빵집을 가려고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독일어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독일어 공부에 더욱 매진하게 해 주었다. 텔레비전을 틀어도 독일어가 나오고, 잠시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려 해도 독일어로 광고가 나왔다. 그렇게 하루 대부분을 독일어와 함께 보내고, 나머지는 그저 나의 생활을 이어나가면 되었다. 어학을 하는 동안에 나의 삶은 그저 독일어와 자유시간 두 가지뿐이었다.


그리고 독일에는 생활의 단순함이 있다. 한국은 가게와 식당들이 평일보다 주말에, 낮보다는 저녁에 활발히 영업한다. 독일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가게와 식당은 일찍 문을 닫고, 주말에는 심지어 영업하지 않는 곳이 더 많다. 노래방, 실내야구장, 스크린골프장, 멀티방, VR 체험방…. 등 다양한 방들로 가득한 번화가도 이곳엔 없다. 외식은 비싸고, 대도시가 아닌 이상 싸구려 피자가게의 피자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럼 이 지루한 나라에서 독일 사람은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싶을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주말에는 주로 주변 숲이나 들판을 산책하거나 공원에서 휴식을 취한다. 영화관, 미술관과 극장 등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학생들은 마트에서 싸구려 보드카를 사서 친구네 집에서 보드게임을 하며 보내는 게 다반사이다. 그러다 보니 항상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것의 즐거움을 반강제적으로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자주 했던 외식과 배달은 생일이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할 수 없었다. 밖에서 사 마시던 커피는 사치품이 되었기에 늘 직접 집을 나서기 전 커피를 보온병에 준비해 가야 했다. 가끔 시내에서 한국에서 즐겨 가던 프랜차이즈 카페를 보게 되면 그저 입맛을 다시며 모른 척 지나쳐야만 했다. 하지만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편하고 지루했던 독일 생활이 일상에서 점점 단순하게 살아가는 재미를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생각보다 집에서 혼자 책을 보거나 사색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저녁마다 친구들과 번화가를 떠돌며 술을 마셨던 일상이 예전처럼 그립지 않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쉬는 시간에 먹을 점심과 커피를 싸서 독일어 수업을 들으러 가고,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독일어 공부를 하고 집안일을 조금 하면 하루가 저물었다. 그리고 그 잔잔한 일상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할 말은 하는 나

나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은 아니었으나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꼭 표현을 했다. 그러나 나에겐 어쩐지 늘 '기가 센 여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나는 그저 내 생각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말이다. 어릴 때 생각을 해보면, 여자아이들은 대게 남자애들이 무례한 장난을 쳐도 웃으며 넘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유별난 여자아이로 취급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나는 남자애들이 이유 없이 여자애들을 때리거나 괴롭히면 먼저 나서서 대신 화를 내주었다. 그럴 때면 남자애들은 우르르 몰려와 '이상한 여자아이'인 나를 구경했다. 내가 여자여서 혹은 여자답지 않아서 들어야 했던 말들을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어릴 때의 고민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었다. 나이가 들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겠다는 바람은 사회에 나가보니 어린 소녀의 환상이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다수의 주장과 상반되는 말을 하면 눈총을 받아야 했고, 그들이 원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눈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사회가 선호하는 사람은 나처럼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할 말도 아끼는 사람이었다. <여자라면 말 대신 웃음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며> 자기 나름에는 선심으로 진지하게 충고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미 수능을 마친지는 오래인데도, 세상은 여전히 보기에 나온 답 중에서 알맞은 것을 골라야 하는 객관식 시험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시험지의 유형은 '(나) 형 - 여자'였다.


하지만 독일은 달랐다. 유럽은 사람들의 개인주의 성향이 동양보다 강하다고들 한다. 사실이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것이 자신과 남에게 모두 좋으니까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성인이라면 더욱이 말이다. 이곳 사람들은 성인은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바를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과 다르다면 무조건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견을 충분히 피력해서 타인의 이해를 돕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비난하거나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먼저 감정적으로 대화에 임하는 사람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별과 관계없이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국에서는 유용하게 쓰이던 '할 말도 아끼는 습관'들이 독일에 적응하는 데는 걸림돌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처럼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주기를 기대했었다. 수업 중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질문을 하고 싶을 때도 굳이 튀고 싶지 않아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거나 결국은 하지 못한 채 집으로 간 적도 많았다. 하지만 독일에서 만난 학생들은 달랐다. 대부분이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은 망설이지 않고 했다. 본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학생이 이미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어도, 전혀 창피해하는 기색 없이 말이다. 한 번은 유독 수업 중 말이 없던 나에게 독일어 선생님이 "네가 이 시간에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것은 너의 권리야."라는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나도 용기를 내서 다른 사람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묻고 싶은 것을 묻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의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나 또한 누군가가 질문을 하거나,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열린 마음으로 들으려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바보같이 들려도 그것이 그에게는 중요한 질문일 수도 있으니까.

  



 만하임에서 어학 시험을 본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나는 다시 비스바덴의 한 대학교에서 독일어 시험을 보게 되었다. 초겨울의 서리가 낀 아침, 옷깃을 여미며 캠퍼스에 도착했다.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캠퍼스는 마치 방학이 끝나고 바로 돌아온 것처럼 그대로였다. 교환학생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던 멘자(Mensa - 독일의 구내식당 또는 학생 식당을 일컬음)와 수다를 떨었던 벤치 모두 그대로인데 달라진 것은 하나, 이제는 혼자 캠퍼스를 걷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대학교에서 왜 어학 시험을 보게 되었느냐면, 마침 진학을 희망하는 근처의 대학교에서 DSH시험 대비반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DSH는 Deutsche Sprachprüfung für den Hochschulzugang의 약자로, '대학 입학을 위한 독일어 시험'이라는 뜻이다. DSH 시험은 주로 대학교에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자체적으로 실시된다.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열리지 않는 이 시험은 대학교별로 시험 전에 준비반이 열리는 경우도 있고 대학교에서 시험만 주관하는 경우도 있다. 준비반을 운영하는 경우에는 학생들에게 보통 3~4개월 동안의 독일어 수업을 제공한다. DSH 준비반은 어학원보다 저렴한 가격에, 대학교수에게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마침 B2 수업과 시험을 뒤로한 터라,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시간이 빠듯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DSH 준비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독일어 B2 어학 증명서를 제출하거나, 대학교에서 정한 레벨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이미 B2 시험을 봤지만, 독일어 증명서가 우편으로 날아오기까지엔 대략 4주까지의 기간이 소요된다. 놀랍지만 이것이 독일의 일반적인 사정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미 시험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준비반에 들어가기 위해 독일어 시험을 봐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로부터 2주 후에 DSH 준비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 반의 담당 선생님이자 해당 대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은 50대 중반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성별이 인상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상을 갖고 있었다. 동화에 나오는 지혜로운 나무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늘 어딘가 엄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는 늘 상냥했고 정성을 다했다.  첫 수업이 열리던 날 교실 안에 모인 학생들은 대략 여덟 명이었다. 그중 세 명은 유럽 출신, 두 명은 아프리카 대륙 출신, 또 나를 포함한 마지막 세 명은 아시아 출신이었다. DSH 시험 자체가 독일 대학 진학을 위한 시험이다 보니 교실에 모인 학생들은 모두 학구열이 넘쳤다. 우리 중 절반은 이미 DSH 시험을 본 경험이 있었고, 나를 포함한 다른 절반은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수업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시험 일정은 정해진 후였고, 우리는 무형의 출발선을 넘어 경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안에서 다시 색다른 사람들이 모인 이 교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독일만의 초록색이 가득한 대학 캠퍼스에 다시 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앞으로 삼 개월 동안 독일어 공부의 마지막 관문인 DSH 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동안 몰랐던 나만의 색채를 찾으면서.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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