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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Apr 26. 2021

W - Wendepunkt (전환점)

우여곡절 논문 작성기

EP. 23

W - Wendepunkt (전환점)


 

  스무  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광화문에 입성했다. 사실 입성이라는 거창한 말과는 대비되게 나의 신분은  광고 대행사의 단기 근무 직원이었는데, 예전으로 치면 어느 대감집 하인이  셈이었다. 나의 업무는 대행사와 어느 대기업의 새로운 프로모션을 이어주는 일이었다. 당시 내가 속한 기획사는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내용은 대기업 직원들이 멘토가 돼서 대학생을 멘토링 해준다는 것이었다. 유명한 회사이다 보니 신청자는 우리의 예상보다 많았다. 당시 나를 포함한 아르바이트생들은 광화문에  임대 사무실에서 일을 했는데, 처음에는 여섯 명이던 직원이 나중에는 스무 명에 가까울 정도로 늘어났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전화로 대기업 직원인 멘토와 프로그램 내용과 일정 등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업무 첫날 본격적으로 전화를 걸기에 앞서 나는 대행사 직원에게 전화상에서 어떤 톤과 매너로 응대를 해야 하는지,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이 말하는 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스무 살은 어른이라고 하기엔 앳된 나이이다. 사회의 때는커녕 어둠조차 쉬이 보지 못했던 어른 아이인 에게 '업무상 전화' 하는 일은 쉽지만 않았다. 한 시간의 교육이 끝나고 처음 실전에 내던져, 전화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누르고, 긴장에 요동치는 목소리를 감추려 노력하며, 최대한 어른처럼 보이려 노력했던 나의 모습은 다시 돌이켜봐도 어쩐지 처연. 하지만  뒤로  개월 정도 지속된 업무는 순진하기만 했던 대학생을 언제 어디서든 긴장하지 않고 업무 대응할  있는 전문가로 만들어 주었다. 초봄과 시작된 프로그램은 가을이 깊어갈  끝이 났고, 나는 아름다운 단풍이 지는 광화문 대감집 대문을 뒤로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6년이 지나 대학원 논문을 쓰는 나에게 경험에서 배운다는 말은 무색하게만 느껴졌다. 낯선 언어를 새로 배우면서는 마치 다시 아이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의 간단한 인사말은 나의 걸음마였고, 매번 머릿속에서 조립하는 독일어 문법은 블록 쌓기 놀이와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보통의 아이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독일어  문장만   알아도 "독일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하며 칭찬해주던 사람들은, 이제 내가 이방인이 아니게 되니 나의 작은 독일어 실수에도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없다"라며 냉담한 얼굴로 모른척했다. 그리고 이제 논문과 관련된 인터뷰를 청하기 위해서 나는 안면도 없는 독일인 전문가(Expert)를 찾아 나서야 했다. 물론 독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독일어로 말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R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있는 제인이라고 합니다.  논문과 관련해 인터뷰해주실 전문가를 찾고 있습니다. 혹시 담당자와 연결해주실  있나요?"


독일은 세계적인 박람회로 유명한 나라이다 보니 박람회와 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 또한 많았다. 하지만 비타민 B(Vitamin B - 직업 분야에서 개인적인 학연 혹은 지연 등의 관계를 일컫는 일상 용어, B는 관계라는 뜻의 독일어 Beziehung을 뜻한다.) 한 알 없는 나에게 독일에서 업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리 작성한 문장을 혀끝에 되뇌며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면, 돌아오는 대답은 무조건 "Nein"이었다. 물론 답장도 주지 않거나 노골적으로 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미처 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불쑥 차갑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람들 접할 때면, 가슴 언저리에서 서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미 나의 논문 신청서는 '전문가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접수가 된 상태였다. 게다가 얼떨결에 '전문가 인터뷰'로 논문을 진행하겠다고 교수에게 말했을 때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라는 표정을 짓던 교수의 얼굴도 잊을 수 없었다. 이제 와 꼬리를 내리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외국인 학생이 인터뷰할 전문가를 찾지 못해 논문을 진행할 수 없었다는 뻔한 클리셰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나의 선택지에는 없었다. 매일 허탕을 치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맛보아야 했지만,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 처음으로 인터뷰를 수락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내가 논문의 이론 부분을 쓰면서 알게  책의 저자이자 박람회와 관련한 앱을 개발한 스타트업의 대표였는데, 며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대 없이 보낸 이메일에 그가 답장해온 것이다. 그의 회사는 베를린에 있었고, 그는 자신의 회사로 오면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베를린은 내가 사는 곳에서 기차로 다섯 시간을 가야 했지만, 나는 인터뷰만   있다면  넘고  건너 외국이라도 기꺼이  마음이 있었다.


점심에 잡힌 약속 시간을 맞춰 나는 새벽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향했다. 그의 회사는 오래된 공장을 개조해 만든 사무실에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청심환이라도 먹고 어찌어찌 긴장을 달랬을 텐데 하며, 들어선 사무실에는 나와 또래로 보이는 젊은 직원들이 곳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선 사무실은 소란스러운 바깥과 달리 적막이 가득 차 있었다. 잠시 후 유리문을 열고 나의 첫 인터뷰 대상자인 T가 모습을 나타냈다. 사실 나는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젊은 스타트업의 대표인 만큼 그는 여러 매체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기도 했고, 내가 참고한 서적에서도 그의 사진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잡담 후에 그의 동의하에 녹음과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하지만 '업계의 전문가들을 만나 논문을 위한 인터뷰도 하고 친분도 쌓는다'라는 이야기는 나에게 허상과 같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준비한 질문들을 던지고, 그가 대답한 내용을 메모하는 데만 해도 나의 정신은 혼미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낯선 전문용어라도 나오면  그대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강의실에서는 조용히 핸드폰으로 검색이라도   있었지만, 둘만 있는 인터뷰 상황에서는 잠깐이라도 딴짓을 하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한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나의 부족한 독일어 실력을 눈치챈 듯했고, 그는 자세한 설명 없이 의무적으로 인터뷰에 임하기 시작했다. 인터뷰가 예상보다 일찍 끝나버린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는 어쩐지 평소보다 천천히 달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베를린에서 돌아온 다음 , 나는  그래 왔듯 습관처럼 아침부터 도서관을 찾았지만   글자도   없었다. 나름 전문가 인터뷰로 논문을 채우기로 했지만,  상태로 인터뷰를 이어가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게 몇몇 전문가를 더 찾게 되더라도 그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그가 했던 이야기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내 모두 하나씩 의미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많은 참고자료를 찾아보았고, 내가 독일어를 수월하게 하지 못해도 인터뷰 대상자가 질문을 이해할  있게 프레젠테이션 형식의 자료를 만들었다. 내가 아무리 외국인이고, 독일어가 나의 모국어가 아니라는 사정은 논문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의 논문의  하나뿐인 전문가이고, 인터뷰 대상자보다  최신의 자료를 알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번째로 진행한 전문가 인터뷰는 나에게 뼈저린 교훈이 되었다.


 뒤로도 나는 낮이면 다시 매일같이 여러 회사에 전화와 이메일을 돌리고, 저녁에는 인터뷰 없이도   있는 이론 부분을 작성했다. 하지만 하늘이 야속하게도 논문 마감일이   정도 남았을 때까지 다른 인터뷰 대상자를 찾을  없었다. 그러던  프랑크푸르트의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던 지인 도움을 받아 다른  명의 인터뷰 대상자를 찾을  있었다.  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광고대행사에서 박람회 관련 일을 하다 최근에 프리랜서로 전향한 사람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처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T 회사에 비해서는 매우 아담한 편이었는데, 사무실은 그의 취향이 드러나는 소품들로 가득했다. 나는 우선 그를 소개해준 친구 R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도 어느 정도 긴장한 표정이었으나, R 이야기를 하면서는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역시나 이곳에서는 청심환보다는 비타민 B  알의  효력이 센듯했다. 인터뷰는   없이 끝났다.  또한 저번 인터뷰로 뼈저린 경험을 하고  터라,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G 인터뷰 후에 나에게 대접할 커피를 타는 동안 친근하게 사무실 벽에 걸린 자신의 작업을 설명해주었다. 마침 그의 전공도 나의 학부 전공과 같았기에 우리 대화는  흐르듯 이어졌다. 그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고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의 사무실을 나섰다.


바로 며칠 후 이어진 세 번째 인터뷰는 친구 B를 통해 이어졌다. B 또한 프랑크푸르트의 광고대행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같은 회사에서 박람회와 관련한 부서의 팀장을 소개해준 것이다. B의 회사는 지금까지 인터뷰를 진행한 회사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회사 로비에는 번쩍이는 트로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세 번째 인터뷰는 지금까지의 인터뷰 중 가장 알차게 진행되었다. 박람회 분야에서 십 년 넘게 일을 하고 있는 L은 그의 경력만큼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태도 또한 예전과 같지 않았다. 이전에는 모르는 단어나 개념이 나오면 부끄러운 마음에 모른다는 것을 숨기기에 급급해 이해한 척 연기를 하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었더라면, 이번에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지금 말씀해주신 부분을 다시 설명해주실  있나요?"하고 공손하게 되물으면, L 친절하게 하나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번째 인터뷰에 와서야, 인터뷰하는 시간이 내가 아는 것을 뽐내거나 모르는 것을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련된  깨달았다.  




 L 인터뷰를 끝으로 나는 전문가 인터뷰를 끝마쳐야 했다. 애초 계획했던 인터뷰의 수에는  미쳤지만, 논문 마감일이   후로 다가왔기에 추가로 인터뷰를 진행하기가 곤란했다.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정리해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사실 내심 부족한 인터뷰 대상자의 수에 대한 질책을 두려워하며 교수의 답장을 기다렸다. 하지만 예상외로 교수는 쉽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최소한의 인터뷰 대상을 채웠으니 다행이라며, 이론 부분에 조금  힘써보라며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교수의 답장을 확인하고 나서야 논문 작성을 시작한  졸여왔던 마음이 풀리며 온몸에 피가 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을 온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논문 마감일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나의 손에는 청심환도, 비타민 B 아닌 하루하루 조금씩 꿰어간 노력의 구슬이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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