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병원은 생각보다 사람들로 붐볐다.
주희는 난소나이와 여러 가지 검사를 하러,
나는 정액검사를 하러 온 날이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깔끔하게 정돈된 복도를 걸었다.
하얀 벽과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복도는
마치 고급 호텔을 연상케 했다.
호텔 객실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문들이 보였고,
각 문마다 작은 번호 패널과 '사용 중' 표시등이 달려있었다.
안내받은 방에 들어서자 은은한
간접조명이 켜져 있었다.
널찍한 방 안에는 공기청정기에서 나오는
미세한 바람 소리만이 맴돌았다.
벽면에는 최신형 대형 TV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 고급스러운 가죽 리클라이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철저하게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독립된 공간이었다.
병원 직원이 채취 컵과 함께
간단한 안내를 하고 자리를 비웠다.
탁자 위에는 기나긴 안내문이 놓여 있었지만,
결국 요지는 간단했다.
TV를 켜자 성인물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지만 검사를 위해
병원이라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채취 컵을 제출할 때는
약간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번 검사로
주희의 불안함이 조금이라도 덜어진다면,
이 정도쯤은 몇 번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검사결과가 문자로 도착했다.
나는 내 남성적 능력이 어느정도인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당연히 내 정자는 세계최고일거야.'
라고 생각하며 문자를 읽었다.
김관희님 안녕하세요
우리아이여성의원입니다.
-정액검사결과-
정액량 : 1.3ml(정상 1.4ml이상)
정자수 : 1,500만/ml(정상 1600만/ml)
운동성 : 40%(정상 42%이상)
직진운동성 : 26.7%(정상 30%이상)
정상정자모양 : 1%(정상 4%이상)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수치가 정상 이하였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각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하나씩 찾아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무거워졌다.
정자의 수, 그들의 움직임,
심지어 모양새까지...
모든 것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매달 반복되는 실망감...
그 모든 것들의 원인이 다름 아닌
내 몸에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우리의 작은 소망을 가로막고 있던 것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난임의 원인은 바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