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웃는 사람이 되자

by 코끼리 날개달기

불혹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40년을 살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 얼굴에 쓰이는 법이니까.


이미 마흔을 넘긴 인생 선배들을 보면

인상이 사나운 사람도 있고

독해 보이는 사람도 있고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도 있다.


그중에 나는 '그냥' 웃는 얼굴이 좋다.





우리 동네 엄마들 중에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언니가 한 명 있다. 그 언니를 두고 동네에 어떤 '웃긴 언니'가 '백제의 미소 같다'라고 그랬다. 이제 그 '웃는 언니'를 볼 때마다 백제의 미소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웃어 버린다.


'웃긴 언니'랑 가깝게 지내다 보니 칭찬받으며 웃을 일도 잦아졌다


- 너 잘 웃는다! 너 웃음소리에 나도 웃겨.



나이가 들어가니 웃는다고 칭찬받을 일도 다 생긴다. 회사 다닐 때는 너무 크게 웃는다고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 너 왜 웃니? 뭐가 웃기니.


그래, 백제의 미소라는 말이 재미없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내 웃음 취향에는 그 표현보다 더 웃기고 정확한 표현은 없다.






지난해 어느 날인가 여럿이 골프 라운딩을 나갔다. 언제나처럼 '웃긴 언니'와 함께였다.


그날, 골프모임에 처음으로 참여한 한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 저... 그럼 제가 호칭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모임의 평균 연령에 비해 본인만 6~7살 어린 나이이기에 아마도 불편하고 어색했나 보다.



웃긴 언니는 망설임 없이 대답해 줬다. 모임에서 자기보다 딱 '한 살 더 많은 언니'를 가리키며,


- 이모. 이모라고 불러.


그날따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상 골프웨어로 쫙 빼 입고 온 '한 살 많은 언니'는 한순간 무너지며 박장대소했다.





'웃긴 언니'도 대학 때 사진을 보니 새침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지금은 정말 많이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렸을 때는 냉정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말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허벅지 굵기에 연연하던 20대에는 그저 '예쁜 얼굴'이 좋았다.

중년으로 접어드는 40대를 바라보니 이제 '좋은 얼굴'에 신경이 쓰인다.



웃고 싶을 때, '웃긴 언니'를 떠올려 본다.



필리핀의 락다운이 강화되고, 다시 아이들이 외출 금지를 당하고, 나도 집 안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지금,

‘웃긴 언니'가 많이 등장해 주길 바란다.


부디 기꺼이 나의 서른아홉을 함께 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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