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좀 하자
<기본 문형>
적당히 하다
<응용 문형>
어허 거참 적당히 쫌 합시다
인내심의 임계점을 넘어서자 상대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옵니다. 누구나 자신이 정해놓은 선이 있습니다. 엄격한 이도 있고 느슨한 이도 있습니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 안에서도 매 순간 그 기준이 움직입니다. 하루는 너그럽다가도 하루는 옹졸해집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말하는 이보다 듣는 상대방이 더 놀라게 됩니다. 상대가 말하는 '적당히'가 적당한 기준도 없이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늘 '적당히'의 기준을 침해한 자가 상대방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기준을 수시로 변경하는 자는 나 자신입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심정이 되어 이 말을 하는 걸까요? '적당히'가 무슨 일을 할 때에는 환영받지 못합니다. 적당히 해서는 기존의 성과를 뛰어넘지 못하고 발전이 더디기 때문이죠. 적당히 살다 보면 큰 사고도 없겠지만 큰 보람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감정이나 언어생활로 가져오면 '적당히'는 참 어렵고 이상적인 지향점이 됩니다. 지나쳐서도 안되고 부족해서도 안 되는 말이나 행동이란 것이 불가능합니다. 늘 서로의 보폭을 놓치고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때에 알맞게 말을 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요원하던지요? 상대의 리듬과 하모니를 이루며 소통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이상적이던가요?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흐트러진 상태를 조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 기준에서 어긋나 보이고 균형을 잃어버린 것이 거슬려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한꺼번에 이 모든 것을 정렬하고픈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이 상태가 합당해? 이 상황이 어울려?
II 말하는 이의 태도에 따라 팔색조가 되는 것
지금 당신이 어금니를 꽉 물고 이 말을 하고 있다면, 방금 전 들은 말이 당신에게는 아킬레스건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이때 주변에 집어 들 물건이 없어야 합니다. 상대가 화를 부추기는 말을 던지면 그다음에 던질 것은 물건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약간의 쓴웃음을 지으며 이 말을 하고 있다면, 당신의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거나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라는 잔소리 투의 말을 들었을 겁니다. 같은 말이라도 뉘앙스에 따라 묘하게 활용됩니다. 동음이의어가 단어에만 있지 않고 문장에도 있습니다. 그러니 말의 태도는 구슬 서 말을 옥으로 바꿔주는 마력이 있습니다.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는 성대에 있지 않고 태도에 있지 않을까요? 지금 당신이 쏟아낼 구슬 서 말 같은 말들을 옥으로 상대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말의 태도를 조금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