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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13. 2022

25. 언어의 냄새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기본 표현>
그렇게 만만하다

<응용 표현>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그렇게 만만해?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여?


I    유연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자의 자기 보호본능 언어 


최근 유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한국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참다 참다 분노에 가득 찬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말합니다. 

: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만만하다는 것은 대하거나 다루기에 쉬운 상태를 말합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약하고 soft 부드러운 tender 대상이라는 거죠. 속된 말로 물러 터진 사람으로 보이냐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호락호락하다가 있습니다. 만약에 상대역이 한국어 정서에 익숙한 역할이었다면 이런 대사도 가능했을 겁니다. 

: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입니까?


누구나 깐깐하고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가까이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보다 원만하고 친근한 관계를 가지고자 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본래 성질보다 부드럽고 친절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자 노력합니다. 점차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이런 노력들이 무색해지는 갈등의 순간들을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이때 우리는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기라도 원했던 사람들처럼 악다구니로 말합니다. '나의 친절을 이용하려 하지 마. 내 인상이 험상궂어서 조금 나답지 않게 말투도 조심스럽게 고쳐 말하고, 내 성질대로 하면 멀어질까 봐 참아가며 너그럽게 널 대했던 거야. 결코 내가 속없는 사람이 아니거든!' 


사실은 만만한 사람 주변에 많이 모이는 법입니다. 우리는 정작 스스로 만만해지기 싫어하면서 만만한 사람을 원합니다. 마치 감정을 희생하고 취향을 억제하고 주장을 억누르는 것을 해야 만만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러나 만만한 사람은 모든 욕망을 누른 절제의 인간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유연하게 잘 다루는 자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그 욕망의 발란스가 무너질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에어백처럼 나오는 말인 것이죠.



II       대답할 수 없는 흥분된 질문에는 겸허한 질문으로 답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늘 착하기만 했던 늘 화낼 줄 몰랐던 친구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온다면 너무 놀라게 됩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은 입만 벌리고 아무런 대구도 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응대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이렇게 응수합니다. 

: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상대가 화가 나 있을 때에는 더 큰 자극보다는 나를 낮추어 돌아보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정말 미안하구나. 내가 그렇게 너에게 잘못 대했었니?' 잘못된 상황의 원인을 화를 내는 친구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지난 언행에서 돌아보는 것은 친구로 하여금 진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화가 날 때 어떤 말로 응대해주는 말이 가장 도움이 되었나요? 아니면 화날 때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응대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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