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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25. 2022

나의 초능력들 3

테니스 : 격렬하면서 우아한

네모난 박스에서 뛰어다니며 철학하기


나는 테니스를 칠 수 있다. 아주 어린 시절 나무로 만든 라켓을 들고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테니스를 쳤다.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치는 것을 유심히 보면서 내 자세를 고쳐나갔다. 코트 가운데를 가르는 네트는 어린 내 눈엔 고래라도 잡을 만큼 커다랗고 기다란 그물처럼 보였다. 무거운 배드민턴 채 같은 라켓을 들고 털 달린 야구공 같은 테니스공을 그물 너머 상대의 코트면 안에 제대로 안착시키려면 그물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요즘이야 골프가 대세이지만 예전에는 아파트마다 테니스코트가 없는 곳이 없었고 관공서와 학교에도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의 고상한 여가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된 주요 공간이 '테니스장'이었다. 하얀색의 테니스복을 아래 위로 갖춰 입고 코트에 서 있으면 갑돌이도 윔블던이 부럽지 않았다.


한여름에 치는 테니스는 매력적이다. 그늘 한 주먹 없는 공간에 쏟아지는 것은 강렬한 직사광선뿐이다. 테니스를 실내에서 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못한 시절이다. 강렬한 태양과 혹독한 추위를 거스르는 것은 테니스 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그런 테니스 정신이란 것은 없지만! 그래서인지 여전히 테니스는 실내보다 실외에서 치는 것을 선호한다. 스트로크와 백핸드를 칠 때마다 나의 팔 근육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침 같은 굵은 땀들을 온몸에서 뱉어낸다. 상대의 서브를 기다리면 상체를 낮춘 채 라켓을 손목으로 돌리며 몸을 좌우로 흔드는 그때는 조코비치가 서비스를 넣어도 맞받아칠 수 있을 것만 같다. 첫 서브가 네트에 걸려 폴트가 된다. 이제 두 번째 서브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코트를 점령한 후 백 발리로 허를 찌를 것이다.


테니스는 스코어가 재미있다. 0, 15, 30, 40로 네 점을 득점하면 한 게임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점수가 화끈하고 후하다. 점수를 부를 때에도 신사적이다. 15-0를 Fifteen Zero (십오 대 빵)이라고 경박하게 상대를 모욕하지 않는다.  Fifteen Love라고 콜 한다. 빵점이 아니고 사랑이라니! 그리고 동점이 되면 듀스 Deuce!라고 말하고 연속 2점을 내야 한다. 쩨쩨하게 가까스로 이길 수 없으니 제대로 실력차를 보이고 끝내라는 것이다. 이어서 1포인트를 얻게 되면 어드밴티지(Advantage) 갑돌이!라고 하는데 '이제 갑돌이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었네!'라고 점잖게 일러준다. 이렇게 점수 시스템도 예의 밝을 수가 없다.


테니스는 상대와 하면서도 지나치게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다. 많은 스포츠도 그러하겠지만 테니스는 유독 멘털적인 부분이 강하다. 구기 스포츠 중에서 이렇게 상대와 멀리 떨어져서 하는 종목이 사이버 상에서 하는 e스포츠 말고 테니스만 한 것이 있을까 싶다. 그 너른 코트에 서 있는 두 명의 선수는 자신만의 정신력과 의지로 한 게임을 스스로 밀고 나갈 뿐이다. 나는 이 순간을 너무 사랑한다. 공격전략도 생각하지만 어제 풀다만 수학문제도 떠오른다. 테니스는 경기중에도 철학이 가능한 스포츠, 사색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내가 지고 있어도 점수가 변경될 때마다 상대를 위해 나의 불리한 점수를 크게 말하기도 한다. 그건 배려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라켓을 들고 팔로 휘두르며 온 코트를 뛰어다니며 공을 받아넘기는 테니스 치기다. 그간의 수많은 우승 트로피는 초능력의 테니스 매니아들도 이 글을 볼 수 있기에 부끄러워 드러내지 않기로 한다. 테니스는 청소년기 작은 나의 신장을 최상으로 늘려 주었고, 누구보다 움직이기 게을리하는 나를 공의 움직임에 따라 몸을 아끼지 않고 던지는 다이내믹한 몸으로 바꿔주었다. 게임 후 땀에 절여진 채 가느다란 바람이 지나가는 그늘 아래서의 독서는 얼마나 달콤하고 황홀했던가! 그때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인간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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