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 세상 모든 것을 담아 안아주는
주머니는 아주머니처럼 포근하다. 무엇에 달려 있기도 하고 홀로 다니기도 한다. 보이는 것을 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내기도 한다. 주머니는 들어와 있는 것도 허용하지만 들락날락하는 것도 허락한다. 비어있는 주머니에 복을 넣기도 하고 욕심을 가두기도 한다. 신체에 붙은 주머니는 혹 주머니다. 옷에 붙은 주머니는 호주머니다. 복주머니는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은 주머니다. 주머니는 붙어 있는 위치에 따라 속주머니, 안주머니, 뒷주머니, 앞주머니가 되고, 주머니의 재료에 따라 비단 주머니, 가죽 주머니가 된다. 주머니는 채워져 있어야 대접받는다. 주머니 사정은 한 인간의 능력을 가늠한다. 주머니가 가볍거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 딱하게 보이는 것은 주머니에 채워져야 할 것은 머니여야 해서다. 호주머니는 본디 머니가 주인이었다.
옷을 살 때에는 옷에 붙어 있는 주머니를 주로 살핀다. 기능으로서의 주머니와 디자인으로서의 주머니가 있다. 한 때 디자인이었던 왼쪽 가슴팍의 주머니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 기능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접어 꽂아두기에 참 유용한 수납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엔 기능이었던 바지 뒷주머니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장지갑이나 도끼빗을 꽂고 다니는 곳이 이젠 그저 모양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치 옷을 여미는 도구인 단추도 아무 기능 없이 디자인으로서의 변모를 하기도 한다. 바지의 앞주머니는 동전과 열쇠를 넣고 다니다가 이 모든 것이 사라진 요즘에는 멋쩍은 분위기에서 손을 넣거나 멋있는 포즈를 연출하려고 손가락 네 개를 힙하게 꽂는 장소로 사용된다. 앞주머니의 깊이와 안정감은 바지를 구입할 때 나름 기준이 되기도 한다.
마음이 우울해지는 날에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빳빳하고 거친 바깥 면과는 달리 속에는 부드럽고 포근하다. 주머니에 특별한 난방을 하는 건 아니지만 체온에서 넘어온 주머니 속 따뜻함은 한겨울에도 꽁꽁 언 손을 녹여주는데 아쉬움이 없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걸으면 몸은 좌우로 흔들리고 어깨는 균등하게 들썩이게 된다. 어깨는 조금 구부정해지고 팔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구부러져 팔과 허리 사이의 공간이 생긴다. 대칭이 불편하다면 한쪽 손만을 넣고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색하다 싶으면 어깨 맨 가방 끈을 잡고 걸으면 된다. 주머니는 부끄러워진 손을 숨겨주는 방이 되기도 하고 긴장된 마음을 만지작거리는 가상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어쩌다가 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나면 보이지도 않는데 가슴에 구멍이 난 듯 허전함에 반짇고리를 찾는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주머니를 좋아하는 것이다. 주머니만을 모아서 옷을 만들어 보고 싶다. 옷에게만 봉사했던 주머니에게 돌려주고 싶은 선물이 될 것이다. 주머니는 애초부터 채우고 싶었을까 비운채 존재하 고팠을까. 주머니는 상자와 달리 공간을 이미 확보하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공간을 만들어낸다. 손을 호주머니에 넣기 전에는 그저 두 장의 맞닿은 헝겊이었을 것이다. 필요가 들어오자 자리를 마련해주는 주머니! 주머니 같은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제 한 몸 간수하기도 버거우면서 넉넉해지고 싶은 순간을 기꺼이 기다리는 주머니가 너무 아름답다. 주머니끼리는 아무것도 나누지 못하면서 각자의 소명을 제 몸이 닳아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주머니의 끝을 따라 손가락으로 촉각 하며 주머니모양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