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손톱 밑 가시의 고통이 먼 나라 슬픔보다 아프다니
드디어 왼손 엄지의 고통을 마감한다.
일주일 가량 지속되었던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엄지 끝의 가시는 너무나 작고 가늘어서 조각난 머리카락으로 보인다.
일주일 지나도록 우연히 박힌 이물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했다.
손가락 끝을 만질 때마다 밀려오는 고통은, 악랄한 고문이 왜 손톱 끝 고문이었는지를 실감케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아리고 따가웠다.
고통은 정직하다.
고스란히 나를 느끼게 한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과 육체가 버젓이 여기 존재한다는 것.
간간히 느껴지는 통증은 신경을 자극하고 자주 리듬을 흐트러뜨렸다.
집중을 방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토록 작은 아픔이 지구 반대쪽 전쟁과 재난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니.
늘 고통은 경계에 자리를 잡는다.
늘 통증은 경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전쟁은 국가 간 이해의 경계에서 발생하고
지진은 지구 내부 판끼리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경계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고통과 아픔은 인간에게 숙명과도 같다.
육체의 고통 또한 인체 내 장기들의 경계가 무수하기에 지속적으로 생겨난다.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이별이 이토록 아픈 이유는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끝과 시작의 경계에 놓여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서글퍼지는 탓이다.
이별 이전으로도 갈 수 없고 이별 이후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그 막막함의 경계에 서 있는 내가 죽도록 싫은 것이다.
익숙한 길이 끝나는 순간!
나는 벼랑 끝에 매달린 꼴이 된다.
경계의 순간은 이토록 잔혹하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고 어떤 걸음을 내딛지 못하게 하는 체면의 시간.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경계에서 초연하거나 경계에서의 나를 잘 통제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곳에는 선택지도 없는 선택을 해야 하고 답이 없는 답안지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운명에게 채점을 맡겨야 한다.
https://youtube.com/watch?v=2jhKDCHEla4&feature=shares
끝과 시작_비스와바 쉼보르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