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 마음으로
사진 찍는 일은 황홀했던 과거보다 평범하듯 스쳐 지나가는 지금이 여전히 더 우월하다고 항변하는 것과 같다. 그 수많은 장미 사진들을 두고도 지금 노인은 셔터를 누르고 있다. 더 나은 장미사진을 얻기 위해서도 아닐 텐데 말이다. 지금 노인의 마음이 장미를 리라이팅 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것이 필사 같은 출사이든 상관없다. 이곳에서 처음 맡아보는 장미 주변의 공기, 그 옆을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낯선 표정들, 그 위를 비행하며 지저귀는 새들의 찬란한 무관심이 노인에게 장미를 찍으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그친다면 노인도 참았을 것이다. 풍크툼 Punctum. 노인은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슬픔의 음성이 들려와 움푹 파인 무언가를 보는 듯하다. 같은 사물을 찍어도 나중에 보면 그것은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감상할 때마다 다른 느낌이었다. 보여주는 이마다 다른 느낌을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시낭송도 그러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틈이 있어서 들을 때마다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낭송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이 말이나 글로 설명하지 않듯이 시낭송도 낭송가가 왜 그렇게 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감흥을 가져다줄 수 있어야 했다.
Nobody sees a flower - really - it is so small it takes time - we haven't time - and to see takes time, like to have a friend takes time. -Georgia O'Keef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