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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n 14. 2024

더워서 미안

0733

덥다

여름이 두 달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간과했다.

예전엔 사월까지 추웠는데 이제는 사월부터 덥다.

겨우 유월인데 팔월의 한가운데를 사는 것 같다.


무덥다

추웠던 겨울도 불과 반년도 안돼 까마득하게 잊었듯이 무더운 여름도 이내 익숙해질 것이다.

계절도 시간처럼 보내고 겪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뜨겁다

길바닥부터 전해온 뜨거움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등줄기를 데우고 목덜미를 태우고 머리를 삶는다.

고르게 익었으니 수육처럼 식탁에 드러눕고 싶다.


후끈거린다

울 때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게 오히려 덜 더워 마셔보지만 더운 몸이 차가워질리는 만무하다.

그래도 몸에 들어가는 음식은 따뜻할수록 낫다.


열받는다

신체의 끝까지 열이 닿아 땀이 솟구치면 급해진다.

판단이 엉성해지고 움직임이 어설퍼진다.

받은 열을 어디로 발산하고 쏟아낼지 모르겠다.


한산하다

은행에도 없고 버스에도 없고 거리에도 드물다.

도시에는 파도도 치지 않고 바닷바람도 불지 않아 아무도 나오지 않고 방구석에서 여름잠을 잔다.


산을 이고 간다

숲이 그리운 현대인들은 머리에 산을 쓴다. 양산!

태양을 피하다가 비가 오면 즉시 우산으로 옮긴다.

혼자도 비좁은 산 속에는 소쩍새가 구슬피 운다.


지루하다

더워지면 몸동작의 다양성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단순해지고 더뎌지는 것은 걸음과 두뇌회전이다.

내 발을 내가 밟고도 남의 발에서 고통을 찾는다.


제대로 산다

감각을 느끼고 불쾌하다면 그건 고통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고통은 살아있음의 직접적 증거이다.

느슨히 과거를 살던 내가 온전히 지금을 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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