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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18. 2024

작정한 낙하

0767

이런 날에는 떨어지는 것에 대해 몰두하게 된다.


바닥에 닿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흩어지는 빗방울.


비가 아니었으면 이토록 추락이 낭만적이었을까.


중력이 힘껏 거드는 추락 중에서 가장 사색적이다.


이도 지속되니 떨어지는 것의 본성이 도드라진다.


세상을 이만큼 적시고도 후련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천을 도로 밖으로 토해내고 산을 베어 문다.


아무리 떠올려도 작정 없이 떨어지는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억센 각오를 듣고자 비 닿는 창에 귀를 대본다.


너에게 가는 방법이
수직의 낙하 밖에 없더라



소중한 일은 거슬러 되돌아갈 궁리를 못한다.


매번 무참히 전부를 중력에 바치게 된다.


그것이 비일지라도 높이를 더듬으며 언어를 조합한다.


빗소리는
비가 시를 짓는 소리일지도 몰라


장마는 만연체의 격렬한 시를 쓰는 비의 백일장 축제.


지붕을 뚫고

우산을 뚫고

가슴을 뚫고


비는 기어이 축축한 원고지 뭉치를 안기고 떠난다.


행간마다 비에 씻긴 새들이 소리없이 웅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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