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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2시간전

쓰는 게 사는

0897

글을 쓰는 것은 살겠다는 무언의 몸짓이다


인내가 쓰고 글이 쓰기에 글을 쓰고 인내를 뒤집고 쓰고


살아보겠다고 쓰고 활자를 머리에 쓰고 세고 문장을 쓰고


쓰고서야 인생이 쓰다는 걸 비로소 알고 미처 알지 못한 것들도 알고 쓰다가 지우고 지우고 난 자리가 쓰라리고 그것이 상처인 줄 어루만지다가 덧나서 쓰라리고 쓰러지고 서글퍼지고 다시 상처에서 문장의 꽃이 피고 지고 


 쓰는 모든 것들은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이었다가 소스라치는 것들이었다가 스스로 소멸하고 저절로 스민다


서 있는 동안 쓰지 못해 앉는다 쓰는 동작은 정지된 상태에서 가능하지만 움직이는 상태보다 더 역동적이다


쓰는 움직임이 미약하나 쓰고 나면 읽는 이들을 움직인다 앉아 있는 읽는 이들을 일어서게 한다 기필코


쓰는 이가 살아가기 위해 쓰는데 읽는 이가 살아간다 살아가게 한다 살아가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침묵으로 서게 한다 살게 한다 


미처 살아내지 못한 여백의 삶을 들추어 알뜰하게 살아가게 한다 남기없이 에누리없이 놓치지 않는 삶으로 이끈다 이끌린다 꾸리게 한다 꾸리꾸리한 이전의 삶을 쓸어낸다 거기에 다른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명랑한 표정을 하고 어서오라 손짓한다 손을 내민다 잡기만 하면 된다 간단해서 불가능이라 부른다 불가능은 어린아이이 얼굴


사는 게 쓰는 것이고 쓰는 게 사는 것


사는 게 쓴 맛이 나는 건 쓰는 맛에 서툰 탓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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