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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신분석 테라피
【죽음의 수용소에서】

by 글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2020


저술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프랭클 박사는 2차 세계대전 중 네 곳의 수용소를 전전한다. 끝까지 삶의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다. 의미치료(로고 테라피) 상담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주었다.

막다른 길에 선 인간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집행유예망상은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은 처음에는 충격을 느끼고 다음은 무감각해지며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혐오한다. 죽음보다 더한 것은 모멸감이다. 이유가 없을 때 구타가 일어나면 정작 참기 힘든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고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했다는 정신적 고통이다.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로 가는 기차 속에서 어릴 때 자라고 살았던 동네를 본다. 죽은 사람의 눈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을 보는 심정이라고 한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수용소에서는 문화적 동면이 일어난다. 작가는 어떻게든 살아내려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한다. 묻고 대답하는 대화를 한다. 배수구로 가서 곡괭이질을 하며 머리는 마비되어 있지만 아내의 모습에 매달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든 살았든 알지 못해도 그런 건 상관없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내면세계를 극대화함으로써 수감자들은 멀리 과거로 도피해 자기 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함으로부터의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



-혼자만의 공간의 중요성


정신착란증 환자가 수용된 막사 뒤 한 귀퉁이에서 5분의 고독을 즐기는 행운이 찾아온다. 앉아서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마음은 집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간다. 집단 생활을 해야 하는 수용소에서 작가는 혼자만의 시간을 얼마나 간절히 바랬던 것일까?


‘옆에 있는 시체, 이가 득실거리는 그 시체도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가는 운명에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주치의가 리스트에서 빼 준다고 하는데도 친구들 곁에 있는 것이 더 좋다고 하며 운명을 받아들인다. 어떻게 이런 의연함을 가질 수 있을까? 탈출직전에도 환자를 위해 갈 수 없다고 친구에게 얘기하고 환자들을 돌본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정신적 승리의 경지다. 어쩌면 죽기로 결심한 것이 프랭클을 살린 건 아닐까?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존엄성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거나 자신도 배고픈 상황에서 자신의 음식을 남에게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다. 극한 상황에서 아무 선택도 할 수 없고 환경에 지배 당할 것 같지만 내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은 사람들의 반응이 놀라웠다. 몇 년간의 수용소 생활로 피폐해졌을 몸과 마음, 심리적인 절망 후에 그들이 보인 반응. 절망에 잠식되어있던 영혼은 쉽사리 해방을, 자유를 인식하지 못한다. 누구 하나 신나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나만 이렇게 기쁘지 않은 기분인가?’ 급기야 동료에게 물어본다. ‘자네 오늘 기뻤나?’ 질문을 받은 동료는 대답한다. 솔직히 그렇지 않았다고.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얼마나 깊은 절망 속에서 지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라던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면 어리둥절해 받아들일 수 없는 정신상태가 지속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어 쉽사리 감정표현을 할 수 없다.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면서 얼마나 자주 이 단어를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그것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현실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의미의 중요성


로고테라피에서 로고는 의미를 뜻한다. 핵심은 책임감이다. 삶의 의미는 세 가지로 창조, 사랑, 시련에 대한 태도이다.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기보다는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의 긴장은 정신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 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작가는 시련을 만났을 때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시련이 시련이 아닌 우리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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