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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소설] 밤바다

by 홍윤표

지난해 친구들과 속초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린 저녁을 먹기 위해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 갔다.
회 맛은 도심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파도소리가 우리를 들뜨게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우린 취했고 밤은 깊어갔다.

자정이 지나갈 무렵 사장님이 알려준 화장실을 찾아 나섰지만 술이 취하면 으레 그렇듯 난 길을 잃었고,
파도소리에 이끌려 바닷가로 걸어갔다.
밤바다는 밤하늘과 하나가 되어 구분이 되지 않았고 파도소리만이 거기에 바다가 있음을 알려줬다.
얌전한 파도에 가만히 오줌을 섞고 있을 때,
바다 멀리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달빛을 받으며 걸어왔다.
거인이었다.
거인은 얌전한 파도를 거칠게 밀치며 바닷가로 나왔고
지친 듯이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난 발목이 다 젖는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 선채 그를 지켜봤다.
거인은 나를 못 봤는지 조금 후에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파도소리와 울음소리가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할 때쯤
거인은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다시 왔던 길을 걸어갔다.
얌전한 파도가 거인의 발걸음에 차여 일렁이고 다시 얌전해질 때까지 난 거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거인은 어깨로 달빛을 짊어지고 밤바다와 밤하늘 사이로 유유히 사라졌다.
횟집으로 돌아오자 친구들이 왜 이렇게 늦었냐며 술을 따랐고 화장실을 찾느라 늦었다고 대답했다.
잔을 들며 창밖을 보니 파도소리만이 거기에 밤바다가 있음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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