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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소설] 캡슐 뽑기

by 홍윤표

동네 문방구에서 캡슐 뽑기를 했다. 500원을 넣고 드르륵 돌리자 작은 캡슐이 굴러 나왔다. 열어보자 조그만 사람 모양 고무인형이었다. 동봉된 작은 설명서에는 물에 하룻밤 담그면 크기가 커진다고 쓰여있었다. 집에 돌아와 컵에 물을 받아 그 안에 인형을 담그고 잤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웬 대머리 할아버지가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제 뽑은 고무인형이었다. 물에 담그면 커진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할아버지의 밥맛은 일품이었다.
한동안 난 할아버지가 해주는 밥을 열심히 먹었다. 할아버지는 저녁에도 밥을 해놓고 기다렸는데, 매일 메뉴가 바뀌어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오늘은 무슨 반찬일까 기대하게 됐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고,
할아버지는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서랍에 넣어뒀던 설명서를 꺼내 흐릿한 글씨들을 다시 보았다. 유통기한이 내일이었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는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진수성찬을 차려놓았다. 마지막 만찬이었다.
난 할아버지가 해준 마지막 밥을 먹으며 눈물을 삼켰고, 할아버지는 그런 날 다독여줬다.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는 맨 처음 캡슐에 들어있던 시절의 크기로 줄어들었고, 난 할아버지를 캡슐에 담아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지금도 가끔 아침을 굶을 때마다 할아버지가 해준 밥이 먹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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