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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텅빈전단지 Nov 05. 2020

진흙, 맥주 그리고 그놈의 피시앤칩스 - 상

영국, Hull city

   오랜만에 검사 일정이 잡혔다. 선박의 *발라스트 탱크 내부의 부식 정도를 측정하고 데이터를 모아 오는 일인데 육체적으로 힘들다. 좁아터진 입구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어른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만한 공간이 나온다. 탱크 내부는 구분되어 있는 셀이 연속으로 붙어있는 구조라 복잡하고 어둡다. 주기적으로 외부에서 입구 맨홀 뚜껑을 닫지 않도록 연락하여야 하고 산소 측정기와 일산화탄소의 농도도 계속 모니터링하여야 한다. 평소에는 바닷물로 채워지는 공간이라 바닥은 뻘처럼 진흙 투성이다.  이렇게 '헐..' 스러운 작업을 하기 위해 헐시티로 이동하였다. 헐....


   생각보다 탱크는 더 깊었고 더 좁았고 또 더 축축했다. 시야를 의존하고 있던 헤드랜턴 불빛에 나의 입김이 퍼지는 것이 보였다. 이미 무릎 아래는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고 끼고 있던 방독면을 통과한 공기에서 짭짤한 소금 맛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감이 피로감으로 바뀔 때 즘 비슷한 처지의 동료가 먼저 입을 열었다.

   "빨리 끝내고 나가서 맥주나 마셨으면 좋겠다."   지루함을 느끼고 있던 다른 동료가 답했다. "피시 앤 칩스도!". 불쌍한 놈들. 우리는 신병 훈련소에서 먹고 싶던 음식을 리스트로 썼는데 기껏 맥주에 감자튀김이라니..

눈치 없는 동료가 나에게 저녁은 뭘 먹을지 물어본다.  "난 빨리 나가서 전기스토브 위에 앉아 있을 거다."


    영국 친구들에게 너희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70%는 피시 앤 칩스 나머지 20%는 카레라고 한다. 감자튀김이 한 나라의 대표 음식이라고?  KFC의 프라이드치킨도 망쳐버리는 영국의 조리 실력으로는 피시 앤 칩스가 대표 음식이 될 법하다. 동인도회사의 설립 원인이 감자튀김에 뿌려 먹을 향신료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영국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면 대부분 수긍한다. 신발 밑창 같이 질긴 스테이크, 신문지를 씹는듯한 식감의 스콘, 딸기가 들어 있던 캘리포니아 롤을 먹은 후로 나는 영국에서 외식 빈도수를 줄였다. (물론 당연히 맛있는 음식도 있다. 다만 드물게 있다.)


*발라스트 탱크 - 선박의 밸런스를 위해 선박의 카고 창 주위로 설치된 U 자형 탱크. 카고가 비어 있을 때는 안정감 있는 운행을 위하여 발라스트 탱크에 바닷물을 채운다.




'Man in Tank'  볼품없는 A4 한 장과 테이프로 나의 삶에 대한 간절함을 표현해 본다. 제발 Hacth  닫지 마세요.

  

극한의 순간에서 피시 앤 칩스가 먹고 싶었던 불쌍한 아이들과 외국인 노동자


  

노르웨이 엔지니어들이 이 곳에서 하루에 8시간을 작업하는 우리를 보고 터프가이라고 했다. 3일 차 같은 곳으로 입장하는 우리를 보고서는 미친놈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터프가이들은 이틀 만에 미친놈들이 되었다. (자기들은 산적같이 생겨 놓고는... )
 가방은 무겁고 출입구는 좁다.  춥고 축축하고 어둡고 복합적으로 굉장히 외로운 이 공간이 그립다. 어쩔수 없이 지금은 뭍에서 일하는 나는 이 공간이 그립다. 아주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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