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없는 이들의 설움
빈부의 격차는 따뜻한 계절보다 추운 계절에서 두드러진다. 고급 재질의 겨울 외투는 최소 수십에서 수백을 호가한다. 겨울에 실내에서 얇은 옷차림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본인 소유의 벽과 지붕이 없는 노숙자들에게 다른 계절은 버틸 만 하지만, 한파 상황에서 맞이할 그들의 밤은 생명까지 위태롭게 한다.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다. 특히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게 더욱.
더위는 기껏해야 짜증을 일으킨다. 반면 추위는 고통을 일으킨다. 살을 엔다. 실내 난방을 하지 못하는 나는 겨울이 고통스럽다. 꽁꽁 언 보랏빛 손발로 지낼 수밖에 없다. 독한 술과 매운 음식을 섭취해 자체적으로 열을 생산한다. 그러면 뺨이 붉게 달아오른다. 그렇다고 해서 후원이 필요한 극빈층은 아니다. 이따금 회사에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모으자는 공지가 돌 때가 있다. 나는 사무실 사람들에게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여기 불우 계장 좀 도와주세요. 한다. 우리 부장님은 내 말을 듣고 에고에고 여기 불우 검사도 있어, 나도 도와줘. 하신다.
저혈압인 나는 아침 기상이 안 그래도 힘든데, 해가 짧아 어둑한 겨울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일은 더욱 고역이다. 하얗고 따뜻하고 포근한 극세사 이불 밖으로 억지로 몸을 끄집어내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이 몹시 고통스럽다. 침대에서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발에 닿는 바닥의 차가운 감촉으로부터 가혹한 세상은 시작된다. 경기도민의 비애와 피로를 어깨에 잔뜩 얹은 채 장거리 운전을 한다.
회사에 가면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미 출근해서 나를 반겨준다. 공무원인 내가 어쩌다 8시 55분쯤에 출근을 하면, 앞자리 계장님은 웬일로 이렇게 일찍 나왔냐, 어제 집에 안 가고 회사에서 날을 샌 거냐고 놀린다. 일찌감치 내 자리에 서 계시며 나를 반겨주시는 우리 부장님은 그 와중에 역성을 들어주신다. 우리 계장님이 일찍 올 때가 얼마나 많은데, 하시며. 사실 내가 일찍 출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언제나 내편인 부장님의 다정한 마음에 아침 추위가 녹아든다. 회사의 작은아버지 우리 부장님. 내가 회사가 망한 후 부장님께 중수청에 함께 가시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더니, 부장님이 중수청장이 되면 나는 수사과장을 시켜주겠다고 하셨다. 그건 좀 과하고 한 급만 올려서 6급으로 승진시켜 달라고 했다. 나는 꿈도 현실적으로만 꾼다.
아직 11월 중순임에도 이렇게 추운데 다가올 겨울은 얼마나 더할지 걱정이다. 길을 떠돌며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던 고양이 중 몇몇은 이번 겨울이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집 고양이들은 예쁘게 태어나 통통한 뱃살을 늘어트리고 먹고 자고 놀기만 하는 안락한 삶을 산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참 덧없는 것이다.
집이 없는 어떤 사람들은 이맘때 작은 범죄를 저지른다. 집이 없기 때문에 주거 부정, 도주 우려라는 사유로 쉽게 구속이 된다. 장발장이 배고파서 빵을 훔쳤던 것처럼 아주 작은 범죄들로. 그들은 감옥의 지붕과 벽 속에서 겨울의 추위를 피해 생존한다. 세상은 누군가에게 특별히 더 추운 곳이다. 그 가혹한 추위 속에서 어떤 생명들은 스러져 간다. 올 겨울은 너무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