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덜 자란 내면의 아이를 마주보며
중학교 때, 인생 계획 네 컷 만화를 그려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 그림 속 네 번째 컷은 29세에 대형 트럭에 치어 죽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는데, 삼십 대를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십 대 소녀의 치기 어린 결심이었다. 그때는 서른 살이 되면 여자로서의 인생이 끝날 줄로만 알았다. 뚱뚱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다 늙은 아줌마가 되어서, 더 이상 살 가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장 찬란한 20대를 마지막으로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 서른 중반을 잘 살고 있는 지금 떠올리면 깜찍하다고 해야 할지 끔찍하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발상이지만, 당시에는 나름대로 진지했다.
조선시대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은 스물일곱 어린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 젊은 나이에도 늙고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절절히 탄식하는 규원가를 지었고, 그 심정에 대해 어린 나는 깊이 공감했다.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나는 계획대로 스물아홉 살에 트럭에 치어 죽지 않은 채 무사히 30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이 자라면 그에 맞춰 당연히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여길 때가 있었다. 지위가 높아지고 몸집이 커지고, 아는 것과 경험이 늘어나는 만큼 진짜 어른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던, 존경하고 의지했던 어른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어른에 대해 실망을 하고 슬퍼했을 때, 우리 부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셨다. 그 어른도 몸집만 컸지 속은 애야. 나는 이제 오십을 바라보지만, 나도 그렇고. 나이를 먹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여전히 아이의 모습이 남아있다고.
어른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1.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 3. (존칭으로) 자기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 책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어른이란 건 책임과 큰 관계가 있나 보다. 어릴 때는 내키는 대로 굴어도 그 결과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어린이는 사회적 보호의 대상이며, 법적으로도 책임무능력자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내 모든 말과 행동, 감정과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부장님 말처럼 나이와 무관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철없는 아이는, 종종 어른으로서의 우리를 흔들곤 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부조리한 상황에 주저앉아 다리를 휘저으며 엉엉 울어버리고 싶고, 모든 걸 다 내던지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고, 나를 파괴하는 무책임한 선택을 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른이므로, 이제 또 몇 년 후면 세상의 혼란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불혹(不惑)의 나이를 맞이해야 하므로. 나는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마음속 아이의 투정에 굴복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내 일부이니까, 손을 꼭 잡고 함께 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