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러너의 레벨업! 2023 JTBC 마라톤
비가 오는 지난 일요일, 첫 10k 마라톤을 완주했다. 몇 달 전부터 신청해 둔 jtbc 마라톤이 내 첫 마라톤이 되었다. 코로나 때 비대면 마라톤만 나가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뛰는 오프라인 마라톤은 처음이었다. 역시마라톤은 함께 뛰는 것에 의미가 있구나 생각했다. 혼자 뛰던 비대면 마라톤과는 120% 다른 경험이었다. 정말 의미 있고, 전율이 있고 뿌듯함과 성취감까지 모두 잡은 단언컨대 올해 최고의 경험이다!
올해 봄, 처음으로 런데이 30분 달리기 8주 챌린지를 끝냈다. 사실 내가 런데이 어플을 알게 된 건 2018년이었는데 나는 러닝을 정말 못 하는 축에 속했고, 의지와 끈기마저 없어 8주면 끝나는 챌린지를 2023년까지 끌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늘 러닝을 잘하고 싶다는 욕망과 러너에 대한 이상한 낭만과 환상이 있었고, 그 덕분에 어떻게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내가 참가한 마라톤은 3만 5천 명 정도가 모여 함께 뛰는 꽤나 큰 규모의 대회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월드컵경기장으로 향하는데, 지하철 곳곳에 나와 같은 형광 주황색 마라톤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직 그것만을 위해 전국방방곡곡에서 새벽부터 모인다는 일은 꽤나 감동적인 일이었다. 지하철역에서부터 좋아하는 마음과 그 열정에서 오는 힘을 받을 수 있었다.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해 짐을 맡기고 시작을 기다렸다. 뛰며 몸을 푸는 사람, 다 같이 모여 스트레칭을 하는 러닝 크루들, 함께 손잡고 도전하러 나오신 것 같은 중년의 부부, 그리고 외국인과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다. 나이도 형태도 모습도 다 다르지만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왔을 거라 생각하니 우리 모두가 동지처럼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출발선에 대기하다가 드디어 출발선 너머로 한 발짝을 내디뎠다. 원래 나의 러닝 라이프에 대해 말해보자면, 최고로 많이 달려본 게 7k 정도고 그 마저도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1k만 가도 숨차고 힘든 느낌이 들어 바로 걸어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내 주변엔 온통 주황색 옷을 입은 러너들로 가득 차 있고 그들 모두 걷지 않고 뛰고 있으니, 나도 멈출 수 없었다. 마라톤에 나가면 소위 '대회 빨'이라는 게 있어서 평소보다 더 잘 뛰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군중심리인지, 동기부여일지 모를 그 이상하게 벅차오르는 마음을 안고 나도 함께 뛰었다.
너무 힘들어서 걷고 싶어 질 때쯤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어디선가 응원 소리가 들려온다. 러너들이 지나는 길에는 러닝크루에서 온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서서 깃발을 흔들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자신의 러닝크루 사람들이 아닌 러닝 하는 모든 사람들을 목이 쉬어라 응원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들의 응원을 덥석 받아먹으며 나는 힘을 냈다.
터널을 지날 때는 그 캄캄하고 소리가 울리는 어둠의 길을 지나며, 각자 파이팅을 외치곤 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지, 남을 위한 것인지 모를 응원이지만, 우리 모두 같은 처지에 있으니 그 응원에 힘을 받으며 함께 소리 질렀다. 때론 누군가의 등 뒤에 붙여진 배번호의 문구를 보고 힘이 나기도 했다."run for your life" , "love earth", "여성들의 달리기를 응원합니다" 등 의 문구를 등 뒤에 붙이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 자신은 볼 수 없고 남만 볼 수 있는, 등 뒤에 붙인 그 메시지가 뒤 따라오는 누군가에게 힘을 줬다는 사실을 아실지 모르겠다. 중간 지점이 지나면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열이 오른 러너들에겐 비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비인데, 오히려 좋고 감사하게 느껴지며 일종의 해방감마저 들었다.
올해는 사실 너무나도 혼자 있고 싶던 해였다. 왜 내가 스트레스받아가며 남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지, 협업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마라톤을 하면서 그 마음을 조금 반성했다. 분명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함께 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이, 함께여야만 깨부술 수 있는 벽이 있다. 진부하지만 '장관이다'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러너들의 주황 물결이 아니었다면 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함께 뛰었기에, 1시간 20분이 목표였던 내가 1시간 08분 안에 들어왔고, 걸어도 되니 완주만 하는 것이 목표였던 내가 처음으로 한 번도 안 걷고 1시간 넘게 뛸 수 있었고, 7:30 페이스면 잘했다고 생각하는 내가 처음으로 6분대 페이스로 마라톤을 끝마칠 수 있었다.
함께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정도까지도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영영 몰랐을 것이다. 한 번 해내고 나니 그동안 내 페이스가 낮았던 것은 사실 엄살 피우면서 조금만 힘들면 포기하려는 내 성격 때문에, 혼자였기때문에, 내 최고 버전의 달리기를 안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기록일지 몰라도, 봄까지만 해도 5분 달리기에 헉헉거리던 나에게는 올해 이뤄낸 최고의 성취다. 불가능해 보였던 이 목표를 어떻게든 해냈으니 이제 더 높은 목표를 꿈꿀 수 있다. 이 뿌듯함과 성취감이 달리기뿐만 아니라 내 인생 전반에 녹아들어, 두려움 없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도 도전하는 내가 될 수 있기를! run for your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