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는 매력이 있다.
모래와 바다와 하늘이 자아내는 가득 차 있지만 텅 빈 공허.
나는 그 풍경을 좋아한다.
오후 3시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겨울바다에 와있다.
생각을 정리할 때면 어디로든 여기가 아닌 어디로든 가본다.
버스를 타며 창밖으로 익숙한 풍경들이 뒤로 사라져 갈수록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갈아 입는 느낌, 원래 있던 옷은 벗어두고 다른 옷을 입는 느낌이 좋아서 그렇다.
겨울바다는 잔잔했는데 물결이 일렁이는 정도였다.
주인이 뒷모습으로 반기는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한잔 주문하고
양손이 따뜻해져서 다시 바닷가 벤치에 앉았다.
쏴아 쏴아 철썩.
아, 좋다.
물결은 다가오다가 부딪힐 때만 철썩 소리를 냈고 우리는 그것을 파도소리라고 불렀다.
한동안 아주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일보다는 힘겨루기에 지쳐있었다. 밀고 당기는 실랑이 같은 것.
왈칵하고 넘쳐 들어와 삶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을 꺼트려버리는 파도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꽃을 꺼트리려 던 것이 아니라 그저 부서져버리려는 잘게 잘게 부서져 포말이 되어버리는 물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저 당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나는 가만히 물결이 다가왔다가 철썩 소리를 내 부딪히고 부서졌다가 사라지는 것을 한동안 보았다.
물결이 만들어내는 춤. 일렁 일렁. 두둥실 그런 춤.
그래 부딪혀 보자.
가까워지고 멀어졌다가 뒤엉키고 부서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