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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랜드 Apr 11. 2021

내향적인 내가 부동산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내향적인 내가 부동산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나의 내향적인 성향은 쉽게 변하기 어려웠다. 마침 학교에서 하는 봉사활동 교양을 들으면서 외부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봉사활동의 경험은 낯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교양 과목 이수를 마치고 봉사활동을 더 해보고 싶어 졌다. IBK 기업은행 행복 나눔 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학생 멘토단에 지원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 멘티에게 도움이 되는 체험활동을 기획하고 함께 체험을 하는 활동이었다. 나와 나의 멘티 H는 그렇게 한 달에 두 번 서울 방방곡곡을 누볐다. 나도 어린 시절 엄마가 세명을 데리고 체험활동을 다닐 여유가 있지 않아서 이런 경험이 별로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 나도 처음 해보고 나의 멘티 H도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 우리를 쑥쑥 성장시켜 주었다.    


 누군가에게 베풀고 보람을 느끼는 활동을 나의 자존감을 높여 주었다. 대외활동에 가면 내가 학교가 제일 안 좋을 거야 라고 스스로를 낮추며 도전하지 않았던 대외활동에 도전하였다. 실제로 대외활동에서 만난 친구들은 명문대 친구가 많았다. 같은 조가 되어 미션을 같이 수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친밀해졌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수능점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들은 서로 존중하며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친구들 덕분에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준비할 용기도 생겼다.


 1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집에서 통학을 하기로 했다. 이때 마침 뜻이 맞는 선배들과 함께 신문 토론 동아리를 만들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동아리를 만들면 매월 지원금을 주었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신혼부부 떡볶이에서 즉석 떡볶이를 먹는 것이 우리 동아리의 진짜 즐거움이었다. 선배들과 신문 토론 동아리를 하면서 부동산 금융 경제에 대해 눈이 떠졌다. 혼자 했으면 어려울 수 있던 경제학 수업을 같이 들으며 경제학 원리를 익혀 나갔다. 부천에서 용인까지 4시간의 통학 거리를 다니면서 경제 신문을 들고 다니며 읽었다. 신문을 읽으며 아는 것이 쌓여갈수록 자신감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구로구에서 통학하는 선배와 같이 버스를 타는 경우가 있었는데 선배와 나는 긴 통학 거리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우리 회사는 꼭 종로로 가자”라고 했다.


 2013년 1학기, 한 학기 휴학을 하게 되었다. 대외활동 경험을 해 보고 싶었고,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하는 친구들은 다한다는 토익에 나도 입문했다.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대학생 기자단 활동을 시작으로 외국계 부동산 회사가 관리하고 있는 복합쇼핑센터의 대학생 마케터를 하게 되었다. 최우수 마케터가 되면 인턴을 시켜 준다고 하여 인턴 경험이 필요했던 나와 J, L언니는 최선을 다해 활동을 했고 마침내 최우수팀이 되어 각자 200만 원의 Mall 기프트 카드를 받았고, 최우수 마케터가 되어 인턴의 기회를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공정하지 않았다. 인턴의 기회를 주겠다는 주관사는   이상 연락이 없었고,  차례 연락 끝에 인턴의 기회는 C 호텔의 아르바이트였다.  일은 쇼핑몰 MD, 부동산 개발 회사의 입사 커리어를 목표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아니었고, 결국 우리 스스로가 포기하는 걸로 매듭지어졌다. 호텔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던  점심에 마케터 활동을 같이 했던 N을 우연히 만났다. N 사원증을 매고 동료들과 걸어가고 있었는데, 순간 그녀를 보았을  우리 셋은 그녀가 우리의 자리를 빼앗아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주최  부장이랑 본인 삼촌이랑 아는 사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 셋은 정규직을 바란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해내서 스펙을 쌓기 위해 인턴직을 하고 싶었다. 우리는 기회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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