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멍든 종이
오랜만에 마음을 다잡고, 글을 써보자 시도했다.
두 번째 소설 투고에 실패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만큼, 실망한 마음을 다시 추스르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흐의 <영혼의 편지>를 읽었다. 그 시절 그의 상황에 비춰, 적어도 내 처지가 그렇게까지 암담하진 않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첫 번째 투고 때보다는 극복의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다.
그래, 좋다. 다시 써보자.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지?
멘붕이다.
길을 잃은 기분이다. 아니, 아예 걷는 법 자체를 잊어버린 것 같다.
게다가 눈까지 갑자기 흐려진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온통 아득하기만 하다.
내가 원래 글을 쓰던 사람이었나? 글을 잘 쓰던 사람이었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정말 글을 밥 먹듯 쓰던 사람이었나?
머릿속엔 여전히 많은 영감이 떠오르고, 쓸 거리도 감성도 남아 있는 듯한데, 왜 쓰지도 않고 쓸 수도 없을까?
내가 정말 '창작'... 그래, 그건 양보하더라도, '기록'을 남기던 사람이 맞긴 한가?
수첩, 일기, 노트, 연습장.... 블로그, SNS, 동호회 게시판, 아님 포털 사이트 댓글... 그 어디에서든... 내가 열심히 남긴 글의 흔적이 있을까?
사실 한참 되었다. 글쓰기를 멀리한 지.
말이 안 된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소설 두 편이야 마치 밀린 숙제를 해치우는 것처럼 꾸역꾸역 어떻게든 해냈다치자.
하지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 오던 그 ‘기록’들은 차마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나도 SNS 계정은 있다.
실명이 아닌 영문명, 그것도 외국에 있을 때 만들어 지인이라 할지라도 검색하거나 '추천인'으로도 찾아오긴 어려운, 매우 폐쇄적인 공간이다.
그곳에 가끔 올리는 것이라곤 단지 사생활이 드러나지 않는 사진 한두 장, 1분도 될까 말까 하는 공유 동영상 하나, 그리고 거기에 붙이는 극도로 짧은 코멘트 몇 자가 전부다.
그마저도 5일이 지나면 모두 비공개로 돌려버린다.
점점 글을 남기는 것에 염증이 나고, 수치스러워지고, 두려워진다.
가장 중요하고, 어쩌면 유일한 독자일 나 자신조차 내 글을 다시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글이란 그저 배설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나조차 내 글이 더럽고, 1회성이고, 버려지는 것이라 믿어버리고 있다.
그래, 내 글은 똥이다. 인정!
원래도 소화를 거치지 않은 글은 거의 써본 적이 없다.
그럴듯한 미화나 환상을 더하더라도, 머리를 이용한 것이라기보다는 소화기관을 거쳐 아래로 내려온 느낌이다.
나같이 잡생각도 많고 호기심으로 사물을 파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이 하는 말이라 신뢰하기 어렵겠지만, 정말로 그렇다.
스스로 받아들여 소화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거의 쓰지를 못한다. 가만 보니 대화를 할 때부터 그렇다. 잘 모르거나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눈과 귀, 입을 닫고 외면하는 편이다. (물론 요즘은 나이가 드는 만큼 오히려 이런 점은 고치려 노력하고 있다.)
비하의 심정도 있다.
성경 구절에서 나로 인한, 그리고 주의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면 이제부터는 차라리 맘이 편해지기 시작한다.
배설물을 보고 얼른 물을 내려 흘려버려도, 우리는 결국 어쩔 수 없는 유기체다. 아무리 문명의 이기로 감추어본들 본성은 언젠가 우리도 배설물처럼 썩어 분해되고 마는 한갓 먼지와 다름없는 존재임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 몸소 체감하는 것이니까.
동물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이 말도 이제는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수많은 명인들의 수많은 명저들...
이제 그런 것이 있었다더라 정도로만 회자될 뿐, 그 인물들에 대해, 명저들에 대해 직접 찾아보고 읽어보려는 노력은 점차 사라져만 간다.
이름, 명성이라는 것도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지는 걸 모두가 동시에 목도하고 있다.
사실 그 역시 똥인 것이다. 배설물.
인류의 거대한 문명의 수레바퀴 아래에, 결국 바짝 말라비틀어져 부서지고, 낱낱이 분해되고 만다.
그래도 똥은 역시 거름이다.
우리 모두 똥을 싼다. 동물이라면 누구나.
그리고 그 똥은 감사하게도 썩는다. 이 똥은 광대한 토양에 스며들어 분해되고 다음을 위한 기름진 거름이 된다. 거대한 자연의 흐름에 동참한다.
그렇게 완전히 소멸되어 자취를 감출 때, 진정 다음 세대를 위해 온전히 쓰였다고도 할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위인들도, 곧바로 다음 시대에선 비난을 받고, 또 그다음 시대에는 그마저도 완전히 잊히고 만다.
몇 세기를 지나서도 여전히 인류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기에 클래식이라 불리는, 소위 고전들도 이제는 다이제스트, 아니 줄거리 소개, 아니 그것도 모자라 무관심 속에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중이다.
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글을 갈망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글이 많이 봉사했고, 이미 충분히 쓰였기에 불필요해진 것이길, 나는 진심으로 바라본다.
자연스레 내 글이 종이책으로 출판되는 것에 대한 욕심도 많이 내려놓았다.
옛날, 글이 권력자의 전유물이었던 시대에는, 글을 알지 못하던 민중들에게 글은 입으로, 노래로, 연극으로 불려지고 퍼졌고, 그에 대한 보상은 한 두 푼의 수고료, 또는 밥 한 끼, 한밤 쉬어갈 잠자리 정도면 충분했지 않은가.
지금은 오히려 그 시절과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고흐는 화가로도 너무나 손색없지만 그의 글 또한 이렇듯 훌륭한 줄은 미처 몰랐다.
부럽게도 그의 그림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어쩌면 나는 화가가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화가가 되겠다는 고흐를 반대하고 화상이나 목사가 되길 바랐던 그의 부모의 실루엣 위에, 화가가 되고 싶었던 내가 기자나 작가가 되기를 바랐던 우리 부모님이 겹쳐진다.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을, 이렇듯 잡설로 달래 본다.
언젠가 고흐처럼 나도 글을 완전히 놔버리고 그림만, 그리는 날이 올 수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