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 아빠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아빠는 내 계좌로 돈을 좀 보냈다고, 뭘 좀 주문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연락하신 거였다. 아빠가 아픈 뒤로 나는 각종 건강식품이나 필요한 물품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보내드렸었다. 예전엔 부모님이 인터넷으로 뭘 사달라고 부탁하면 꼭 돈을 받곤 했다. 이번엔 아빠가 얼른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낸 거라 돈을 안 받아도 괜찮은데 아빠는 내가 돈을 많이 썼을까 봐 걱정됐나 보다. 그러면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아빠는 내 우체국 계좌로 돈을 보냈다고 했다. 우체국 계좌? 그거 안 쓴 지 오래된 건데... 그 계좌로 말할 것 같으면 어언 십몇 년 전의 기억을 꺼내야 한다. 대학교 신입생일 때 학생증과 연계된 체크카드 때문에 처음 만든 게 바로 그 우체국 계좌이다. 10여 년간 나의 주거래 계좌로 썼었고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긴 지 오래다. 카카오송금이나 토스가 없던 시절 모든 건 그 계좌를 통했다. 하도 많이 써서 외웠던 그 계좌번호는 다시 봐도 익숙하다. 오랜만에 은행어플에 접속해 로그인을 하고 거래 기록을 조회해 봤다. 가장 최근에 아빠가 보낸 돈 말고는 한동안 거래가 없었다. 다른 계좌로 옮긴 지 오래인데도 아빠에게는 이 계좌가 대학생 시절부터 직장인이 된 사회초년생 딸에게 가끔씩 용돈을 보내주던 계좌로 기억되었나 보다.
아빠가 나에게 또 돈을 보낸 게 언제였을지 문득 궁금해 오랜만에 예전 기록을 살펴봤다. 은행 어플에서는 10년 전 기록까지만 조회 가능한지 2014년이 마지막이었다. '2014.1.1.~2014.12.31.'로 기간을 설정하고 가장 오래된 1년간의 내역을 최근 것부터 천천히 훑어내려갔다. 내 생일도, 명절도, 아무것도 아닌 날에 아빠가 돈을 보내준 내역이 몇 개 있었다. 이날은 왜 아빠가 15만 원을 보내줬을까? 또 이날은 왜 20만 원일까? 이미 돈벌이를 한 지 몇 년은 된 딸에게 돈을 보내줄 이유는 뭐였을까? 너무 궁금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빠가 그걸 왜 보내주었는지 적어둘 걸, 그 사랑을 남겨둘걸.
그러다 어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날인 2014년 1월 1일의 입금 내역을 보고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2014년 1월 1일 하마만세 +300,000원
나를 하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빠밖에 없다. 그러니 이건 아빠가 보내준 용돈인 것이다. 아빠는 내가 교정을 시작할 때쯤 나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돈 먹는 하마라고 했다. 교정하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크면서 물보다 많은 돈을 먹은 그 하마에게, 이제는 월급을 타서 셀프로 돈을 먹고 있는 다 큰 하마에게 새해라고 또 돈을 보내는 아빠의 마음은 뭘까. 하마만세는 또 뭐람. 아빠의 애정 어린 메시지에 2014년의 시작은 참 따뜻했으리라 짐작했다.
지난 5일간 밤늦게까지 연수를 듣느라 바삐 보냈다. 그래도 틈틈이 100일 글쓰기 챌린지 밴드에 들어와 글을 남기려 했다. 그곳은 단 한 줄만, 심지어 '가나다라마바사'만 남겨 놓아도 그 성실함에, 이곳을 방문한 의지에 기꺼이 좋아요를 눌러줄 곳이란 걸 알지만 왠지 아무거나 쓰기는 싫었다. 그래서 뭔가를 쓰다가도 지우기를 반복하며 4일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무엇을 남겨놓아야 하는지 알겠다. 나는 마음을 남겨놓아야겠다. 십 년이 지나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게. 지금 나는 2014년 너머의 사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