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전철을 탈 일이 생겼다. ‘생각보다 사람이 없네. 저기 자리 있네’ 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 급하게 달려와 내가 눈으로 좇던 자리를 꿰찼다. 나는 조금 뻘쭘해져서 이어폰을 찾아 꽂았다. 그녀는 나를 힐끔 보더니, 연신 부채를 펄럭이며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괜히 불편해서 좀 떨어진 곳으로 자릴 옮겨 서 있는데 부채를 펄럭이던 손짓이 나를 부르는 게 느껴졌다. 이어폰을 빼고 “네?” 하고 물으니 맞은편을 가리키며 자리가 났다고 알려준다. “아 괜찮아요. 금방 내릴 거예요.”
알려준 자리에 앉기가 뻘쭘했고, 서있던 다리가 익숙해서 저리 대답하고는 문 앞으로 자리를 옮겨 섰다. 누구에게 뺏길세라 달려와서 앉은 그 자리가 내심 마음에 걸렸나 보다. 서운한 마음이 사그라들면서 피어오르는 생각 하나, 애초에 그리 뛰어오지 않았으면 내게 자리를 권할 일도 없는 거 아닌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간에는 세로 주름이 깊게 패어 있고, 입꼬리는 턱을 향해 주욱 늘어져 있었다. 문득 그녀를 바라보다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내 입꼬리도 어느샌가 내려가 있었다. 나는 입꼬리를 애써 올리고는 좋은 생각을 하려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몇 해 전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나오는데 머리가 하얀 할머님께서 건너려는 게 보여 차를 멈췄다. 할머님은 멈칫하더니 내 차를 향해 목례를 했다. 그 일은 내 인생에서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여유 있는 몸짓과 기품’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단정한 걸음걸이, 자연스럽게 머리를 뒤덮은 백발머리. 잠깐 세워준 차에 대한 고마움으로 목례를 하다니. 처음 보는 신선한 광경이었다.
‘저 할머니처럼 기품 있게 나이 들고 싶다.’
이십 대의 나는 서툴렀고 성급했다. 회사에서는 직무에 나를 맞추며 버티고, 퇴근 후 지인들과 만나면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쉴 새 없이 지껄였다. 말에 깊이를 담을 새도 없이 그 순간을 웃음으로 채워야만 어색하지 않았다. 서로 목청을 높여가며 의미 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배불리 음식을 먹어도 집에 오면 헛헛하고 기진맥진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뱉어낸 말이 화살이 되어 돌아오진 않을지 곱씹었다. 막상 외로울 때 연락하고 싶은 곳이 없던 시절.
계약직이었으니 늘 이년 뒤를 걱정해야 했고, 그 불안한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퇴근 후 늘 학원을 전전했다. 나를 돌아본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도 모르던 때였다. 나보다는 외부에 주파수를 기울였고, 내가 원하는 게 무언지 미처 들을 새가 없었다. 나 대신 쌓여있는 각종 감정의 찌꺼기가 나를 대변했다. 조금만 감정이 담겨도, 꿀렁꿀렁 토해내기 바빴다. 꿀떡꿀떡 하루를 삼키다 보니 점점 체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몸에 체기를 주는게 무엇인지 돌아 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도 꾸준히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갈수록 혼자인 시간이 외롭지 않다. 오롯이 나를 충전해 내는 방법을 하나씩 발견한다. 애쓰지 않고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한 번씩 든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
한 살이 덮어질수록 향긋해지고 싶다. 요즘은 나이를 더해 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스무 살 때는 이십 대 중반이 되면 늙어버리는 기분이었고, 서른 넘어서는 이십 대 중반이 아름다웠다며 아까워했다. 그 순간을 아끼고 사랑할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세월을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
의견을 수용하고 배울 줄 아는 사람.
입꼬리가 올라가고 인상이 선한 사람.
행동이 차분하고 늘 여유 있는 사람.
위트 있는 말솜씨를 가진 사람.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나이를 갖추기.
환경을 생각하기.
소비 보다 생산적인 생활을 하기.
남의 사생활에 신이 나 험담하는 것이 유일한 낙인 사람보다는
내게 집중하고 좋은 생각과 성향이 맞는 사람들과 여유로운 삶을 꾸려야지.
중년의 창고를 차곡차곡 쌓아 인품과 지혜가 풍부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