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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Jun 24. 2020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6개월 만에 짤려 마이 아파. 그래도 좋아.

*메인 사진은 2018년, 최고의 DJ 김신영 씨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출연 후 찍은 사진입니다.*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이.아.파.>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음껏, 토록 자세히, 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이.아.파.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라디오 DJ는 아나운서의 영역 중에 가장 자유로운 분야 중 하나에 속한다.

 뉴스 앵커나 시사교양 MC 같은 경우는 정해져 있는 큐시트 안에서 기사나 원고를 정확하게 읽어 전달하는 리더(reader)의 역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라디오 DJ는 그렇지 않다.


 오프닝과 클로징, 주요 코너 등 어느 정도의 원고는 나와 있지만 그 외의 원고 플레이는 없기 때문에, 대부분 청취자들의 사연과 DJ의 애드리브로 방송이 꾸려지게 된다.

 원고를 직접 쓰는 아나운서들도 있으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 내 개성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방송이다.

 PD가 작성해 오는 큐시트도 개괄적인 내용만이 포함돼있기 때문에 갑작스레 벌어지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 특히나 청취자들의 사연에 반응해 제작진과 협심해 즉석에서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라디오 DJ에 가장 필요한 자질로 개성 있는 목소리, 번뜩이는 재치, 순발력, 유머 감각 등 다양한 덕목들이 있지만,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공감과 소통능력이다. DJ가 전하는 말 하나하나에 반응해주는 청취자와 함께 호흡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청취자들은 남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도 자신이 좋아하는 라디오 DJ에게는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애인과 이별했어요.”, “면접에서 또 떨어졌어요.”, “친한 친구와 절교했어요.” 등 라디오 DJ에게는 무수한 사연들이 도착한다. 이런 사연을 보내주는 청취자에게 DJ는 위안과 격려, 잠시 쉴 공간을 선물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청취자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일, 즉 공감과 소통능력이 가장 필요하다 보면 되겠다.


 2011년이었다. 처음으로 라디오 DJ를 맡게 됐다. 프로그램 제목은 <Playlist, 김나진입니다>. 방송시간은 새벽 3시부터 4시까지 한 시간이었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방송되는 데일리 프로그램이었다.

 나름 애착을 갖고 도전을 해봤지만 첫 도전은 쉽지 않았다. 방송 4년 차에 처음 맡은 DJ는 내 능력을 넘어서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청취자들의 말에 어떤 말로 응답해줘야 할지도 잘 몰랐고 라디오 특유의 호흡에 적응하기엔 쉽지 않았다.


라디오 특유의 호흡이라는 걸 조금 더 덧붙여 이야기해보면, 라디오는 일단 방송이 시작되면 DJ가 혼자 이끌어 나가야 하는 매체다. TV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구성물, 화려한 CG 등 든든한 지원군이 있지만 라디오는 오로지 DJ의 목소리만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참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물론 PD가 선곡한 음악이 중간중간 큰 쿠션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아무 설명이나 말없이 노래만으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큰 사고가 났다고 가정해보자. 당연히 DJ는 그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리고 슬픔도 함께 나눠야 한다. 그런데 또 그 이야기만 주야장천 할 수도 없다. 격려하고 위로하는 분위기에서 다시 원래 프로그램의 분위기로 바꾸어 이끌어주는 건 오로지 DJ의 능력에 달리게 되는 거다. 청취자가 부담스럽지 않은 호흡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DJ의 명운이 달려있다.


 어찌 됐든 나도 이런 DJ에 도전해봤지만, 결국 6개월도 안 돼서 ‘짤리게’ 되었다. 프로그램은 폐지되었고 함께한 PD와 작가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나 때문에 팀이 해체되고 좋은 진행자가 되지 못한 거 같아 참 마이 아팠다. 그 뒤로 라디오 DJ는 항상 숙제처럼 남아있는 영역이 되었다. 물론 지금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매주가 도전으로 인식된다. 그만큼 라디오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이성이 크다는 방증일 거다.


 하지만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코로나 19 사태 속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귀갓길 지하철에서의 감동적인 안내방송으로 공감을 이끌어 낸 지하철 기관사가 있었다. 그분이 가장 탁월했던 능력은 역시 공감과 소통능력 아니었을까.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고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깨닫는다면 바로 DJ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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