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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Aug 05. 2020

아나운서의 숙명, 뉴스 특보와 뉴스 속보

뉴스 속보하다 경위서 써서 마이 아파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이.아.파.>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마음껏, 이토록 자세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파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이.아.파.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4편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5편 <아나운서 되려면 무슨 과를 나와야 하나요?>

6편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7편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8편 <강렬했던 예능 출연의 기억과 유느님의 은총>

9편 <선택을 하기보다 받아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지금은?>




아나운서의 일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뉴스 특보와 뉴스 속보에 대처하는 것이다. 특보와 속보는 그 종류가 참 다양하다. 지금 같은 여름철에는 태풍과 집중호우 관련 특보가 쏟아지고, 겨울에는 폭설 특보나 화재 상황이 자주 생긴다. 날씨와 상관없이 수시로 터지는 정치, 경제, 사회의 각종 사건, 사고들도 있고 북한 핵실험,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같은 북한 관련 이슈 등 다양한 뉴스 특보, 뉴스 속보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뉴스 특보와 속보는 엄연히 다른데, 특보는 대개 정규편성 외에 특별히 편성되는 뉴스라 생각하면 되고, 속보는 갑작스레 들어오는 상황을 방송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특보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준비는 조금씩 하고 들어가지만 속보는 그럴 여유가 전혀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뉴스 속보는 2010년 11월에 있었던 연평도 포격 사건 속보였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아나운서국에 긴급 투입될 아나운서를 요청하는 다급한 전화가 왔는데,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뉴스 앵커 경력이라고는 오후 5시 뉴스를 6개월 진행해본 것이 전부였던 내게 화살이 돌아왔다. 당시 국장은 내게 "나진아 할 수 있지? 할 수 있어야 된다. 지금 너밖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라는 말을 전하며 스튜디오로 뛰어가라고 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는 종이 한 장이 없었다. 그 무엇도 준비되지 않은 그저 날 것 그대로의 상황을 마주했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말하기 위해 필요한 입과 나도 모르게 쥐고 온 파란색 사인펜 하나가 전부였다.

 *부조정실에서 진행 PD가 말했다. "나진 씨 일단 아무것도 없이 방송 들어갑니다. 오프닝 알아서 하시고, 적당히 시간 끌어 주세요. 하나하나 소식 들어올 때마다 *토크백으로 말씀드릴게요."

 오프닝을 뭐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부끄러워 기억을 지웠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찾아보기도 무서우니까. 격앙되고 흥분된 상태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수차례 버벅대며 말을 이어갔고 어찌어찌 상황을 정리해서 이야기한 기억만 남아있다.

 기다렸던 첫 리포트가 나가고 나서야 기자 한 명이 스튜디오에 긴급 투입됐다. 그 기자는 바로 현 뉴스데스크 앵커인 왕종명 기자였다. 평소 에이스 기자로 소문난 선배가 옆에 앉으니 조금씩 정신을 되찾기 시작했다.

 선배가 한 이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말은 그 어떤 자료나 기사보다 내게 천군만마였다.

 "나진 씨, 무슨 질문이든 던지세요. 다 받아줄 테니까. 걱정 말고 차분하게 하세요."


 고작 3년 차, 햇병아리 아나운서였던 나는 그 말에 잠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흥분 상태는 여전했다. 그저 흥분된 상태로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던져댔다. 우문현답이라고 했던가. 왕 선배는 나의 어이없는 질문들을 현명하게 받아내며 방송을 잘 이끌어주었다.

 그렇게 왕 선배의 도움을 받아가며 겨우겨우 방송을 마쳤지만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연평도 주민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오디오 사고가 난 것이다. 주민의 목소리가 내게 전혀 전달이 되지 않았고 나는 계속 들리지 않는다는 말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경험이 쌓였다면 잘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1분도 넘는 긴 시간을 "잘 안 들립니다."라고만 반복하며 질질 끌게 됐고, 그 일로 나는 결국 경위서까지 쓰게 됐다. 참 마이 아팠다.


 특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미국 대선 특보와 나로호 발사 특보였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 될 당시에 이틀에 걸쳐 뉴스 특보를 진행했는데 우리와 전혀 다른 방식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전달하는 과정이 참 재밌고 뿌듯했다. 몇 차례 도전 끝에 끝내 성공한 2013년의 나로호 발사 특보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나로호 특보 당시


 뉴스 특보와 속보는 아나운서에게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항상 냉철하게 중심을 잡을 줄 알아야 하고 어떤 상황이 터지더라도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경험이 역시 중요하다. 흔들리지 않는 멘탈 역시 중요하다. 평소 두루두루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역시 꼭 필요하다. 그래야 어떤 분야의 속보가 터지더라도 대처할 수 있다.

 일부 아나운서들 중에는 뉴스 속보나 특보에 대처하는 과정 중 얼굴 메이크업이나 헤어 정리를 가장 먼저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할 때의 가장 우선순위는 사건의 핵심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외모를 가꾸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다양한 뉴스거리를 평소에 관심 갖고 지켜보며 공부해 시청자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 외모를 정리하는 일은 뉴스를 진행하며 중간중간 아티스트들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내가 올린 사진처럼 스튜디오의 조명이 좋아서 화면은 알아서 잘 나온다.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그렇다. 외모가 경쟁력인 분야도 분명 많이 있지만, 이제 시대는 외모보다 실력이 우선인 시대로 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실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성실함과 전문성이다. 거기에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까지 겸비한다면 그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특보, 인생의 속보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그날을 위해 실력을 갈고닦고 경험을 쌓자. 그러면 나처럼 마이 아프지 않을 수 있다.


*부조정실 : PD, 엔지니어, CG 등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모여 프로그램 제작을 총괄 지휘하는 곳

*토크백 : 부조정실의 PD와 스튜디오 안의 진행자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무선 통신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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