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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Jul 29. 2020

선택을 하기보다 받아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지금은?

거부하기 쉽지 않아 마이 아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이.아.파.>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마음껏, 이토록 자세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파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이.아.파.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4편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5편 <아나운서 되려면 무슨 과를 나와야 하나요?>

6편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7편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8 <강렬했던 예능 출연의 기억과 유느님의 은총>




아나운서는 언제나 선택을 하기보다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사실 방송계에 출연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운명도 대개 비슷하다. 배우는 수많은 작품 중에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골라서 투입되는 것이 아니고, 감독에 의해 섭외, 즉 선택을 받는다. 예능인 역시 이미지와 역할에 따라 필요한 곳에 기획자에 의해 선택을 받는다. 서바이벌 경연에 참가한 아이돌 지망생은 대중의 지지, 즉 선택을 기다린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론칭돼 아나운서가 진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판단이 서면 기획자(PD)는 그에 걸맞은 아나운서를 물색하게 된다. 아나운서국과 상의를 거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한두 명이 섭외 후보에 오른다. 딱 한 명만 콕 집어서 섭외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 됐든 그 이후에 해당 아나운서가 섭외 제안을 받아들이면 섭외 절차는 마무리가 된다.

 간혹 아나운서가 기획 단계부터 함께 만들어 나가는 프로그램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드문 경우다. 특정 프로그램이 기획돼 연출 PD가 결정되고 작가 등 스태프가 꾸려지면, 거의 마지막 단계에 아나운서가 결정된다. 각종 예능이나 시사 교양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아예 처음부터 특정 출연자를 염두에 두고 론칭하는 프로그램도 당연히 있다. 유느님 같은 클래스의 경우가 그렇다.


 나는 처음 출연 제의를 받을 때 아나운서들의 리액션에 주목하고 싶다. 아, 아나운서라고 확장시키는 것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일인 것 같다.  이건 아나운서 중 한 명인 나의 경우다.

 그 리액션이라는 건 약 10년 차 전후로 나뉜다.  

 우선 10년 차 이하의 시기 때는 이랬다. 그 프로그램의 성격과 관계없이, 그게 어떠한 취지이든, 나와 맞든 맞지 않든, 하고 싶든 하고 싶지 않든, 최우선적으로 긍정적,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당연히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4~5년 차가 돼서는 나와 맞는 일과 아닌 일을 조금씩 구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내 일이 아닌 것 같은 분야에 요청이 들어와도 방송 일정이 겹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교적 어린 연차 시절엔 선택받으면 거부하기 참 힘들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확장성이었다. 예를 들어 <불만제로>에 리포터 제의를 받았다 쳐보자. 그 일은 그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일을 선호하든 말든 그건 부수적인 문제이고, 그 역할을 잘 수행했을 때 그 일은 또 다른 일로 연결된다. 리포터 역할을 잘하면 스튜디오에 나올 기회가 주어지고,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잘 뽑아내면, MC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 MC를 잘하면 <불만제로>뿐만이 아니라 다른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섭외를 받는다. 그걸 또 잘하면 이제는 영역을 넘나 든다. 예능, 다큐 등에도 섭외가 된다.

 이런 확장성 때문에 하나의 섭외, 하나의 제안은 참 뿌리치기 힘든 소중한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13년 차인 지금은 이런 것들을 다 경험해 봤기에 조절을 할 줄 알게 되었다. 내 것이 아니라면 거부할 줄 안다는 것. 내가 프로그램을 선택하지는 못해도 나와 맞는지 아닌지는 구분할 줄 알게 된 거다. 그래서 당당하게 솔직하게 NO를 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 분야에 전문성을 쌓아둔 뒤에야 가능하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잘 구축해둬야 한다. 그래야 여기저기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어쩔 때는 이렇게 하염없이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서럽기도 했다. 그저 출연자의 운명이거니 하며 받아들이기도 했다. 물론 선택을 받는다는 행위를 그저 좋지 않은 것만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 선택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커리어를 잘 쌓아왔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주체적으로 내 작품을 고르고 선택하는 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 모르긴 몰라도, 톰 크루즈 같은 톱클래스의 배우들이  배우에 그치지 않고 결국 메가폰을 직접 잡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거 같다.

 

 선택하지 못하고 선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직업을 한탄하며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PD를 했어야 했어. PD를....... 어이구. 내가 왜 아나운서를 해가지고......."

 한탄만 한다고 처해있는 환경이 바뀌던가. 절대 아니다.

 특히나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한 명의 아나운서는 그저 선택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단(유튜브, SNS, 다른 것 그 무엇이든)을 활용해 나를 드러내고 맨파워를 올리는데 열중해야 한다.  내가 잘하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내가 하나하나 선택을 하며 나아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13년 차인 나도 전혀 늦지 않았다 생각한다. 기획, 연출, 출연, 편집을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가 되면 되니까. 유튜브라는 기회의 땅이 펼쳐져 있으니 말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을 발굴해나가며 내 가치를 끌어올리면 되니까. 이건 비단 아나운서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일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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