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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Sep 16. 2020

아나운서들이 피할 수 없는 그것, 방송 하차 통보

자주 들어 마이 아파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이.아.파.>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마음껏, 이토록 자세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파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 이. 아. 파. 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4편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5편 <아나운서 되려면 무슨 과를 나와야 하나요?>

6편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7편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8편 <강렬했던 예능 출연의 기억과 유느님의 은총>

9편 <선택을 하기보다 받아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10편 <아나운서의 숙명, 뉴스 특보와 뉴스 속보>

11편 <뉴스 앵커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이유>

12편 <아나운서국에 날아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선물들>

13편 <아나운서들은 죄다 욕망 덩어리?>

14편 <아나운서국에도 돌+아이가 있다?>

15편 <아나운서의 기본, 라디오 뉴스>




 아나운서들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이야기가 있다. '평생 내 것인 방송은 없다.'는 것. 아나운서들은 방송인이면서 직장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 조직의 조직원이다. 개인이기 이전에 조직원이기에 조직의 필요성에 의해 수시로 프로그램에 투입되며, 또 반대로 수시로 하차하기도 한다. 아나운서들에게 투입과 하차는 새로운 일이 아닌 늘상 있는 자연적인 일인 것이다. 하지만 쉬이 익숙해지지는 않는 일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프로그램에 발탁이 돼 투입될 때는 신이 난다. 처음엔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지만,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었다는 생각이 들면 인간 본연의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며 의욕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하차 통보를 받으면 당연히 마음이 마이 아프다. 아나운서들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애정을 듬뿍 담아 임하기 때문에 하차 통보는 늘 아픈 일이다.

 

 하차 통보는 받는 방식이 참 다양하다. 먼저 아나운서국의 보직 부장들에게 받는 경우가 있다. 같은 아나운서 선배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이기 때문에 납득이 잘 된다. 하차 통보를 전하는 선배도 방송에서 내려와야 하는 후배의 심정이 어떤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십중팔구 위로와 격려를 전해준다. 그런 위로의 말을 들으면 금세 진정이 되고 스스로도 마음을 잘 추스를 수 있게 된다.


 제작진, 담당 PD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경우도 있다. 말을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PD도 진행자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에둘러 말하며 최대한 다른 이유를 대며 설명을 해준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보통 제작진에게 이야기를 들으면 내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그리 썩 편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직접 하차 통보를 듣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씁쓸함을 달래곤 한다.

 

 제작진에게 직접 하차 통보를 듣는 것이 왜 위안이 될까? 그 이유는 바로, 내 하차 사실을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빨리 아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너 프로그램에서 이제 빠지고, 다른 사람을 넣기로 했어." 이 말을 당사자에게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나운서 선배든 제작진이든 이 말을 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에게 조금 늦게 전달되는 경우가 있고, 그전에 소식이 빠르게 퍼지게 된다. 내 프로그램에서 내가 하차하는데 내가 가장 늦게 알게 될 때, 마음이 더 마이 아프다.


 방송국에 입사해 가장 놀라운 것은 정보의 회전이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회사의 어떤 중요한 사실이 결정되면, 점심시간 무렵엔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그 소식을 다 알게 된다. 아나운서 관련 이야기 같은 작은 소문 역시 빠르게 퍼져나가기에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이 내 소식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전혀 엉뚱한 곳에서 듣는 경우가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배에게 갑자기 듣기도 하고, 다른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듣기도 한다. 사실 가장 확률이 높은 곳은 분장실이다. 방송국 분장실은 모든 정보가 모이는 정보의 집합소다. 모든 출연자들이 꼭 들르는 곳이기 때문에 출연자들에 대한 소식이 가장 빠르게 오고 간다. 출연자들이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을 받는 시간은 남자는 보통 20분, 여자는 1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안 나오는 이야기가 없다. 자연스레 출연자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가 빠르게 전파되는 것이다.




 하차 통보의 방식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해봤지만 사실 이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통보 방식이 다르면 또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아무리 좋게 포장한다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마이 아플 수밖에 없다. 그것을 잘 털어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실 아나운서국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에서든 선순환이 필수적이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또 다른 사람이 기회를 얻을 것이고, 나 역시 누군가가 프로그램에서 내려와야 그 프로그램에 투입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돌고 돌며 수많은 종류의 일들을 접한 후에야 나를 알게 되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


 애정을 갖고 있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때의 심정은 모두 같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 다시 도전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도전해서 다시 좌절하고, 시도해보고 또 실패하고, 그러다 보면 내게 딱 맞아떨어지는 옷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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