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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Aug 19. 2020

아나운서국에 날아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선물들

선물 덕분에 가장 행복해, 선물 때문에 마이 아파.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이.아.파.>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마음껏, 이토록 자세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파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이.아.파.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4편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5편 <아나운서 되려면 무슨 과를 나와야 하나요?>

6편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7편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8편 <강렬했던 예능 출연의 기억과 유느님의 은총>

9편 <선택을 하기보다 받아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지금은?>

10편 <아나운서의 숙명, 뉴스 특보와 뉴스 속보>

11편 <뉴스 앵커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이유>




 아나운서국에는 수시로 참 다양한 선물들이 날아온다. 요즘 정말 보기 힘든 귀한 손편지부터, 팬들이 정성스레 포장해준 인형, 열쇠고리, 필기구 같은 문구류도 있고, 떡, 초콜릿, 과자 같은 음식물도 있다. 영양제, 수건, 손수 만든 각종 수제품 등 그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아나운서들은 보통 이런 선물을 받으면 어디서 누가 왜 보내주셨는지를 밝히고, 아나운서국원 전체와 함께 그 기쁨을 나눈다. 정말 사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에 더해 좀처럼 찾아오기 힘든 아주 귀한 행복이다.


가장 많이 오는 것은 다름아닌 떡!
냉동 제품도 종종 날아옵니다.


 다만 내가 받은 선물은 주로 유쾌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 이름으로 선물이 종종 날아오던 신입사원 당시 나는 <불만제로>라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소비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뛰어다니는 MBC 대표 시사교양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는 현장에 뛰어들어 악덕 업주들을 직접 만나서 취재하는 제로맨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소비자를 기만한 음식점 사장, 겁을 주며 물건을 강매하던 조직 폭력배, 가짜 물건을 팔아 대는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다 보니 좋은 추억이 쌓일 리 없었다. 그러다보니 따뜻한 무언가가 내게 날아 오길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루는 조연출 후배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선배, 이거 불만제로 팀 선배 이름 앞으로 우편물이 왔는데, 이거 좀 이상해요. 보낸 사람 이름도 없고 뭔지 모를 게 들어있는거 같은데 느낌이 이상해요."

 나는 이내 시사교양국 불만제로 팀으로 내려갔고 조연출과 함께 기이한 느낌의 소포를 함께 뜯어봤다. 불만제로 팀으로 날아오는 우편물은 대개 좋은 일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살짝 긴장한 채로 내용물을 확인했는데, 역시나였다. 그 안에 들어있던 물건은 바로 면도칼과 머리카락 뭉치였다.

 온갖 상상이 나를 지배했다. 이 면도칼로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 면도칼로 자신의 머리칼을 잘라서 함께 보내며 저주를 퍼붓는다는 의미인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했다. 열심히 취재를 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것이 이런 선물이라니 참 허탈했다. 남들은 몸 챙기라고 팬들이 영양제도 챙겨주고 각종 과자들도 보내주는데 나는 면도칼과 기분 나쁜 머리카락이라니. 참 마이 아팠다.

 사실 그 선물(?)을 받기 전까지 불만제로 팀에 전해오는 가장 큰 일화가 하나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가짜 고기를 팔아 불법적으로 이득을 취해온 일당이 적발됐는데, 방송이 나가고 나서 그 일당 중 한 명이 가스통을 오토바이에 매달고 와서는 MBC를 폭발시키겠다고 협박을 한 거다. 다만 여의도 시절 MBC는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경영센터와 방송센터가 약 50m 거리를 두고 길 반대 편에 마주 보고 있었는데, 그 협박범은 불만제로 팀이 서식하던 방송센터가 아닌 경영센터에 가서 시위를 벌였다. 말 그대로 엉뚱한 곳에 가서 허탕을 친 거다. 아무튼 청경들도 긴장감 속에 제지를 했고 결국 경찰까지 동원돼서야 사태가 수습됐다 한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극단적인 일부 사례일 뿐이다. 아직도 방송국의 아나운서국에는 훈내를 잔뜩 풍기는 아름다운 선물들이 많이 도착한다. 아내 방송국인 TBS의 경우는 청취층이 주로 자영업자나 어르신들이다 보니 참 정겨운 선물이 많이 도착한다고 한다. 자영업자 분들은 본인들도 힘드실 텐데 힘내라며 족발, 통닭, 피자 등 야식을 보내준다 하고, 어르신들은 본인들이 손수 키워온 소중한 농산물들, 감자, 호박, 오이 등을 계절에 맞게 보내주곤 한다 했다. 사실 그런 선물이 사무실에 도착하는 날이 아나운서들이 자신의 일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또 아내는 오후 2시에 <배기성, 김혜지의 힘내라 2시>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한 청취자가 두 진행자의 캐리커쳐를 올린 하얀 3단 케이크를 보내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참 "방송하길 잘했다.' 하며 돈 주고도 거머쥐기 힘든 뿌듯함을 느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물론 나 역시 참 기뻤다.


 팬들의 선물만큼 아나운서들에게 힘을 주는 것은 없다. 팬들의 정성스러운 선물이 도착할 때면 내 일에 더 충실하게 되고 앞으로 나아갈 가장 큰 동력을 얻는다. 참 감사하고 감사하다. 수십 번 절을 해도 모자랄 일이다.

 그렇다면 아나운서들이 가장 감동하는 선물은 무엇일까?수십 가지 다양한 선물 중에 최고로 꼽는 그것은?

 나는 감히 이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어떤 선물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그것.


 바로 마음이 담긴 손편지다. 꼭 손편지가 아니어도 좋다. 정성스럽게 자신의 진심을 담아 보내온 짧은 말, 응원과 격려를 듬뿍 담은 문구,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정말 사소한 물건에서 우리 아나운서들은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방송을 이어간다.

 악플러들의 공격에 안타까운 일들이 참 많이도 일어나는 이곳 방송계에서 다시금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 것은 역시 따뜻한 말 한마디다.

 이건 방송계뿐만이 아니라 사람 사는 이 세상 어느 곳에나 해당되는 것일 거다.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받은 이 소중한 선물을 꼭 다시 되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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