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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Aug 12. 2020

뉴스 앵커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이유

각자의 자리에서 내 역할에 충실하면 마이 아프지 않을 수 있어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이.아.파.>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마음껏, 이토록 자세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파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이.아.파.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4편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5편 <아나운서 되려면 무슨 과를 나와야 하나요?>

6편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7편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8편 <강렬했던 예능 출연의 기억과 유느님의 은총>

9편 <선택을 하기보다 받아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지금은?>

10편 <아나운서의 숙명, 뉴스 특보와 뉴스 속보>




뉴스 특보 진행을 마치자마자 절친의 카톡이 날아왔다.

"나진아 많이 피곤해 보인다. 고생했다."

 다음날 아침을 먹으며 지난밤의 내 뉴스 영상을 모니터링던 아내도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아니. 얼굴이 왜 이래? 이 다크 서클은 뭐야?"

"며칠 동안 특보 진행하는데 빗속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얼굴에 뭘 바르고 있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더라고. 그래서 굳이 메이크업을 해야 하나 싶어서......."




 최근 기록적인 장마로 많은 분들이 실의에 빠져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까지 가세하면서 비 피해는 더욱 커졌고, 지금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특보 요청을 받은 날은 열흘 전 일요일이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꿀맛 같은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래서 산통 다 깨는 그 전화가 너무나도 싫었다. 갑작스레 일정에 없는 출근을 하게 되니 사적인 감정이 먼저 앞섰다.


 하루, 이틀 하고도 삼일 동안 특보를 진행했다. 그리고 특보가 없는 이틀을 보내고 다시 이틀을 연달아 밤늦은 시간 빗속으로 함께 들어갔다. 그 안에는 생고생이 눈에 뻔히 잘 보이는 사람들과 실제 고생을 하고 있지만 눈에는 보일 리 없는 사람들 여러 명이 있었다. 명확히 들리는 소리도 있었고, 실제 들리진 않지만 들리는 것 같은 소리들도 있었다.

  뒤 쪽으로 강물의 수위가 점점 올라 언제 덮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악천후 속 사투를 벌이는 취재기자, 화면에서 볼 순 없지만 우리가 보는 그 화면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카메라 감독, 감전 등의 위험을 무릅쓰고 어두운 화면을 밝게 보여주기 위해 휴대용 조명 장비를 쏠 방법을 창조해냈을 조명 감독 등 제작진들의 노고가 보이는 듯했다. 복구 작업과 대비 작업을 하고 있는 시민, 경찰, 군인들의 모습이 분명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이재민들의 짧은 인터뷰 속에서 말하지 못한 나머지 이야기들이 다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특보 요청을 받고 불평하던 스스로가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신입사원 시절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방송인이 단정한 용모로 뉴스를 전달하는 것은 시청자를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 중 하나입니다."

 맞는 이야기다. 지금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에서 방송 진행자가 단정치 못하게 보이면 '예의가 없다.' '프로답지 못하다.' '기본을 안 지킨다.' 등 각종 질타를 받는다. 여남을 불구하고 복장을 갖추고 메이크업을 하며 머리를 단정히 해 방송을 하는 건 당연히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는 일이 우리에게 가장 기본이라는 것 또한 변함없는 생각이기도 하다.


 심야 뉴스 특보의 경우엔 메이크업 아티스트들도 이미 퇴근해 없으니 스스로 메이크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메이크업을 위해 가지고 있는 제품이 없었다. 몇 년 전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비비크림 하나가 전부였다.

 이거라도 바르자는 생각이 관성적으로 들었고 조금씩 덜어서 바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마주하게 된 생각이 있었다. 비에 인생의 모든 것을 속절없이 떠내려 보낸 이재민들의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며 준비를 한다는 것이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갑작스레 재해재난 특보를 전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며칠을 비 한 방울 들이치지 않은 편안한 스튜디오에 앉아 사람들을 지켜만 보는 것이 참 자괴감이 들었다. 뉴스 안에, 화면 속에, 그리고 화면 밖으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마음이 참 마이 아팠다.

 첫 삼 일간 발랐던 비비크림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그냥 노메이컵으로 방송을 했다. 그 시간에 기상청 레이더를 한 번이라도 더 들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 앵커라는 역할이 그렇다. 좋은 소식보다 안 좋은 소식이 대부분이다. 따뜻한 뉴스보다 비판적인 뉴스가 대부분이다. 잘한 일을 칭찬하기보다 잘못한 일을 꼬집는 것이 일상이다.

 그런 면에서 감정이입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뉴스 앵커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 벌어지는 답답하고, 무섭고 힘든 일들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세상에는 온통 암흑일 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무엇보다 먼저 사람인지라, 감정이라는 녀석을 완전히 배제하기 힘들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마구 때린 교사를 보면 화가 치밀기 마련이고, 끝나지 않는 집중호우로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이재민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올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뉴스로부터 올라오는 감정 때문에 뉴스 앵커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것은 큰일이 아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 누구의 삶에 영향을 줄리 없는 개인의 작은 행동일 뿐이다.

 하지만 역시 사람인지라, 말할 거리도 되지 않는 그 작은 행동을 굳이 말하며, 심지어 글까지 써가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본다. 이것은 내 마음이 편하고자 나를 위해 취하는 '가짜 행동'인 것이다.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은 잘못됐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자리가 있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정확한 보도를 위해 힘쓴다. 틀리지 않은 정보를 보내지 않기 위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다. 혹여나 위험지역에 있던 시민 중 단 한 분이라도 우리의 뉴스 특보를 보고 큰 피해를 벗어날 수 있었기를 바라며 정확하고 신속하게 뉴스를 전한다.  

 그것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내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 그것이 사람인 내가 할 수 있는 '진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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