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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Sep 23. 2020

아나운서들은 방송 안 할 때 뭐하니?

보일 때보다 보이지 않는 순간의 노력이 많다면 마이 아프지 않을 수 있어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이.아.파.>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마음껏, 이토록 자세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파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 이. 아. 파. 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4편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5편 <아나운서 되려면 무슨 과를 나와야 하나요?>

6편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7편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8편 <강렬했던 예능 출연의 기억과 유느님의 은총>

9편 <선택을 하기보다 받아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10편 <아나운서의 숙명, 뉴스 특보와 뉴스 속보>

11편 <뉴스 앵커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이유>

12편 <아나운서국에 날아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선물들>

13편 <아나운서들은 죄다 욕망 덩어리?>

14편 <아나운서국에도 돌+아이가 있다?>

15편 <아나운서의 기본, 라디오 뉴스>

16편 <아나운서들이 피할 수 없는 그것, 방송 하차 통보>




아나운서는 직장인이다. 직장인은 당연히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있다. 아나운서들이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직장인임이 달라지지 않는다. 방송만 띡 하고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근무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아나운서들은 방송 안 하는 시간에는 무엇을 할까?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역시 방송 준비다. 방송이라는 것은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그 성격도 워낙 다양하기에 방송 준비를 하는 방식도 스펙트럼이 참 넓다. 방송국이 아닌 다른 직장의 관점에서 보면 놀랍기도 할 거 같다.

 만약 일반 직장에서 근무 시간 중 영화나 책, TV를 대놓고 보는 직원이 있다면? 아마 상사는 저 친구가 필히 미쳤을 거라 생각할 거다. 계획된 반항이거나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의지로 인식할 거다.

 하지만 아나운서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출발 비디오 여행> MC가 영화 한 편 안 보고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까? 책 프로그램 진행자가 책 한 권 읽지 않고 프로그램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근무 시간에 자유롭게 영화도 보고 책도 봐야 한다. TV는 더 마음껏 본다. 방송국에는 TV가 없는 곳이 없고 꺼져있는 시간이 없다. TV로 먹고사는데  TV를 안 보면 어쩌란 말인가.

 사실 주변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했던 대목이 이 부분이었다. 방송 준비라는 큰 대의명분 하에 근무 시간 중 남들이 놀거나 쉴 때 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이건 내가 입사 시험 면접에서 말한 입사 지원 동기이기도 하다. "MBC에 들어가 마음껏 놀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방송 준비가 마냥 즐겁지 않은 프로그램도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지금 내가 주로 하고 있는 스포츠 쪽이다. 수많은 자료를 분석해야 하는 스포츠 캐스터는 준비 과정이 꽤 마이 아프다. 준비해야 하는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많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라도 경기를 보지 않으면 모르는 내용이 우수수 떨어진다. 조금이라도 나태할 순간이 없다. 실제 중계방송을 하는 하루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모든 날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스포츠 캐스터가 중계하는 3시간에는 최소 곱하기 10, 30시간의 노력이 묻어있다. 최소로 따졌을 때 말이다.

방송 준비할 때 만드는 중계 자료의 일부

 방송 안 하는 시간 방송과 관련된 일을 준비, 주로 놀고 즐기는 쪽 일을 한다고 해서 또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좋아하던 취미가 일이 되면 그 일이 싫어지는 것처럼 그저 즐길 수 있는 행위를 일로써 대하니 그건 아쉬운 점이다. 일과 내 삶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도 단점이다.


 방송 준비 중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모니터링이다. 모니터링은 연차에 관계없이 아나운서 일을 그만둘 때까지 따라다니는 숙제다. 방송에 나온 내 모습과 목소리를 확인하고, 내용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다음에 더 나은 방송을 만들어가는 필수적인 시간이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사실 이것이 방송 준비 중 가장 필요한 것이다. 평소에 신문 챙겨보고 기사를 빠짐없이 체크한다. 모르는 용어나 정보는 공부한다. 모르는 사람이 방송을 하면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시청자도 알게 된다. 공부하지 않는 아나운서는 방송을 할 자격이 없다.

 의상 피팅, 메이크업 등 방송에 기본적인 외모를 준비하는 일도 최우선 순위에는 들지 않지만 역시 빠져서는 안 되는 방송 준비 중 하나다. 중요하지만 내면을 채우는 것을 건너뛰고 먼저 가면 안 되는, 함정에 빠져들기 쉬운 준비 과정이다.


거르면 안 되는 모니터링 및 뉴스 기사 확인


 방송 준비 외에 또 다른 일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조직의 일'이다. 아나운서들의 일이라는 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방송이지만, 조직원으로서의 임무 역시 방송만큼 중요하다. 조직의 힘을 기르기 위한 취지의 각종 업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프로젝트, 기본적인 일과의 분배, 교육 시스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인 우리말 관련 업무 등 조직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 많으면 많지 결코 적지 않다.


 그러면 방송 준비와 조직원으로서의 임무 외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뭐 기본적으로 피우는 농땡이야 직장인들이라면 다 같은 마음이며, 눈치 보며 하는 퇴근 역시 비슷하다.  

 역시 가장 좋은 건 자기 계발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맨파워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는 직장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이전 직장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대한민국 사회는 직장인에게 자기 계발을 강요하지만 그것을 할 시간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 모순된 환경이었으니까.

 나의 경우만 따져봐도 MBC에 입사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도전을 했다. 어학은 기본이었다. 영어는 하다 하다 결국 포기했지만 2012년에는 일본어 자격시험, JLPT 1급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캘리그래피, 미술관 도슨트, 몸짱 되기 등 취미 쪽에도 늘 도전했다. 이제는 곧 출간 작가가 되는 도전을 한다. 이렇게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도전을 이어간다.

 



 아나운서들이 방송에 얼굴을 내미는 시간, 혹은 목소리만 나가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어떤 프로그램이냐에 따라 짧으면 1분도 될 수도 있고 길게는 네다섯 시간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1분 뒤에는 치열한 노력이 뒤에 숨어있다.

 뉴스 진행자가 기본적 시사 이슈를 전부 끄집어내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시사교양 MC는 해당 분야의 완전한 전문가가 돼야 한다. 라디오 DJ는 원고 작성을 위해 창작의 고통 속에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예능이라고 해서 그냥 단순히 놀러 가는 게 아니다. 재미를 끄집어내야 하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연구해야 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곳에만 이목을 집중하지만 아나운서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력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그래야 우리의 일을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으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건 어느 조직에서나 마찬가지다.


 보이는 직업이라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는 수도 없는 노력을 이어가도 드러나지 않는 직업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하지만 보이는 것은 그에 따르는 책임이 수반되기에 무조건 장점으로만 보기에 어려운 구석이 있다.


 이래저래 일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된 이후로는 완벽한 직업이라는 건 없으며 그래도 나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일이 왠지 더 좋아 보여 자꾸 눈에 들어오게 된다. 또 그와는 반대로 내 일을 사랑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는 모순되는 일이 반복된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보일 때보다 보이지 않을 때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면 결국엔 마이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보이는 것만 신경 쓴다면, 처음에 조금 빨리 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건 분명 나 자신을 살아있다 느끼게 해 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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