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진 Sep 02. 2020

아나운서국에도 돌+아이가 있다?

방송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아나운서들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이.아.파.>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마음껏, 이토록 자세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파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 이. 아. 파. 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4편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5편 <아나운서 되려면 무슨 과를 나와야 하나요?>

6편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7편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8편 <강렬했던 예능 출연의 기억과 유느님의 은총>

9편 <선택을 하기보다 받아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10편 <아나운서의 숙명, 뉴스 특보와 뉴스 속보>

11편 <뉴스 앵커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이유>

12편 <아나운서국에 날아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선물들>

13편 <아나운서들은 죄다 욕망 덩어리?>




 보편적 무료 방송을 제공하는 공중파 7사(MBC, KBS, SBS, OBS, TBS, CBS, 극동방송)에는 도합 250여 명 내외의 현직 아나운서가 존재한다. 그 규모는 역시 KBS가 가장 크다. 100명이 넘는 아나운서들이 포진해 있다. 다음으로 MBC가 약 40여 명으로 많고, SBS가 30명 내외의 규모다.

 공중파만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약 250여 명 정도만 현직 아나운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인데, 다른 특정 집단도 마찬가지겠지만, 하나의 직종 안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같은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는 정말 내향적인 사람도 있고, 그와 반대로 너무나 외향적인 사람도 있다. 본 투 비 관종인 사람도 있으며 대중 앞에 서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관심을 버거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 12년 동안 아나운서 생활을 하다 보니 정말 다양한 부류의 아나운서들을 지켜봐 왔다. 오늘은 한번 그것을 정리해 본다. 이걸 왜 해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미는 있을 거 같으니까.




1. 달변가 형


 아나운서들 가운데 꽤 많이 존재하는 유형이다. 말을 하는 직업인만큼 말하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말하는 것도 청산유수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말할 때 2박 3일도 부족하다 하는 사람들이다. 쉴 새 없이 떠들어도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도 가지고 있다.

 방송도 기가 막히게 뽑아낸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감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다.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철갑 멘탈도 가지고 있다. 프로그램의 중심을 잘 잡아주며 유려한 말솜씨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제작진도 가장 많이 찾는 유형이다.

 장점만 많을 것 같지만 단점도 있다. 워낙 기가 세고 진행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함께 출연하는 아나운서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 부족한 경우가 있다. 옆에 함께하는 사람이 다소 위축될 수 있다. 하지만 아나운서는 말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직업이기에, 이런 달변가들은 그 실력 하나만큼은 최고로 인정받는 유형이다.


2. 돌변가 형


 아나운서라고 하면 대부분 활발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도 제법 많다. 이들 돌변가 형은 평상시엔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내고, 다른 사람들과 그리 많이 말을 섞지 않는다. 직장 생활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은 가지고 있으나 겉으로 잘 표출하지 않는 아나운서들이다.

 다만 돌변가 형은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모한다. 그저 내향적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방송만 들어가면 미친 듯이 활기를 뿜어내고, 종종 저 세상 텐션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카메라의 빨간 불이 꺼지면 다시 평소처럼 돌아온다.

 장점은 튼튼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디에서든 제 몫은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단점은 성향 파악이 힘들다는 것이다. 내가 약간 이쪽에 속하는데, 평소 내 개성을 잘 드러내지 않으니 선배나 타 부서 PD들이 어떤 프로그램에 적합한지 쉽게 감을 잡지 못한다. 그래서 자리 잡는데 조금은 오래 걸리는 유형이다.


3. 평소 그대로 형

 사실 돌변가 형은 아나운서 레벨로 따지면 하위 레벨 쪽이다. 방송은 있는 그대로, 평상시 생활과 똑같이 하는 사람이 소위 말하는 만렙(게임에서 최고 레벨)이다. 돌변가 형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유가 있다. 내 모습은 사실 그렇지 않은데, 방송 콘셉트에 맞춰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게 없는 걸 끌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 그대로 형은 무서울 정도로 언제나 똑같다. 사무실에 있을 때나, 방송을 할 때나 완벽히 똑같은 말투, 표정, 속도로 말한다. 회식을 하든 행사를 하든 무엇을 하든 같은 톤, 같은 화법을 유지한다.

 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이 유형이 게임으로 따지면 만렙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방송을 하기 때문에 방송이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내 개성을 마음껏 뽐내기 때문에 캐릭터도 확실하게 잡힌다. 평소 나와 똑같으니 스트레스도 덜하다. 체력소모 역시 줄어든다.

 단점을 꼽기 힘든 유형이다. 하지만 단점이라고 하면 평소 그대로의 모습을 방송에서 보여줄 수 있기까지 참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20년 차 이상 아나운서들 중에 이런 유형이 많다.


4. 이미지 형


 평소 그대로 형과 정반대의 아나운서들이다. 일상생활에 보여주는 모습은 전혀 다른데, 방송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로 살아가는 유형이다. 실제 생활에서는 굉장히 거칠고 날 것 그대로인 사람이 뉴스 앵커를 맡으면 정제된 모습으로 재탄생할 때가 있다. 또 평소 너무나도 따뜻한 사람이 고발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 날 서고 비판적인 사람으로 이미지가 탈바꿈되기도 한다.

 사실 이 유형은 대부분의 아나운서가 겪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프로그램에 성격에 맞추어 본인을 맞춰가다 보니 내가 아닌 이미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돌변가 형과 유사하긴 하지만 이미지 형이 그와 다른 것은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어떤 이미지 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돌변가 형처럼 무조건 내향적에서 외향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예전에는 이미지 형이 대세였다. 방송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최근엔 있는 그대로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대세다. 그렇기에 이미지 형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인격적인 면도 그렇다. 평소 인성을 잘 닦아두어야 들통이 나지 않는다.


5. 죽어라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노력 형과 배짱과 자신감으로 승부하는 천재 형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그것을 대하는 방법이 천차만별이다.

 어느 쪽이 더 낫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하나의 프로그램을 대하는 자세가 정반대인 것이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겉으로 보이는 결과는 비슷하다. 프로그램의 결과라는 것이 굉장히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한 영역이기는 하지만 죽어라 노력 형과 배짱 있는 천재 형 모두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재능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내게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옷을 찾았을 때 별다른 노력을 얹지 않아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력이라는 것도 참 놀랍다. 도무지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을 해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6. 그 밖의 부류들

 이 외에도 참 많은 유형이 있다. 끼를 주체할 수없어 마구마구 발산하는 '끼 발산 형', 도무지 알 수 없는 그저 이름으로 모든 게 설명되는 '돌+아이 형', 세상의 중심이 완벽히 나인 '관종 형',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무한 겸손 형', 반대로 너무 자신감이 충만한 '내가 최고야 형', 말을 시작하면 두서없이 질질 늘어놓기 바쁜 '만담 형', 사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고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정치인 형',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두문불출 형' 등 특정한 하나의 집단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아나운서국에도 역시 존재한다.




 지금은 퇴사한 모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나운서들은 홀로 빛나는 하나의 태양이 아니라, 각자 흩어져 밝은 빛을 내뿜으며 밤하늘 전체를 빛나게 해주는 별들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우리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말 같지만, 어떤 집단이라도 그렇지 않을까. 단 한 명만이 너무 밝게 빛나서 다른 사람들이 내뿜는 빛들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보다,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색을 담은 빛을 내뿜을 때, 그 아름다운 빛들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순간, 하나의 조직은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밤하늘을 수놓고 있을 거다.

이전 03화 아나운서들은 평소에 뭘 입고 다니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