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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Oct 07. 2020

아나운서들은 평소에 뭘 입고 다니니?

반바지 입고 출근하다 혼나서 마이 아프기도 했어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이.아.파.>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마음껏, 이토록 자세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파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 이. 아. 파. 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4편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5편 <아나운서 되려면 무슨 과를 나와야 하나요?>

6편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7편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8편 <강렬했던 예능 출연의 기억과 유느님의 은총>

9편 <선택을 하기보다 받아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10편 <아나운서의 숙명, 뉴스 특보와 뉴스 속보>

11편 <뉴스 앵커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이유>

12편 <아나운서국에 날아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선물들>

13편 <아나운서들은 죄다 욕망 덩어리?>

14편 <아나운서국에도 돌+아이가 있다?>

15편 <아나운서의 기본, 라디오 뉴스>

16편 <아나운서들이 피할 수 없는 그것, 방송 하차 통보>

17편 <아나운서들은 방송 안 할 때 뭐하니?>

18편 <13년 차 아나운서도 넘을 수 없는 높은 벽, 내레이션>




 보통 아나운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반듯함이다.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뉴스를 전하거나 정형화된 방송 복장을 입고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 임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런 모습이 떠올려진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아주 가끔 예능 프로그램을 나가도 연예인들처럼 자유분방한 패션을 추구하기에는 쉽지 않다. 언제나 단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에 조금만 선을 넘는 것 같으면 으레 욕구를 차단하곤 한다.


그렇다면 평소 아나운서들은 어떤 옷을 입고 출근을 할까. 평소 출근 룩은 정해진 것이 없다. 한마디로 자유다.

 10년 넘게 지켜본 바에 의하면 아나운서들은 딱 세 가지로 나뉘는 거 같다. 자연인과 비자연인 그리고 플러스알파.

 나는 자연인 계열에 속한다. 아나운서들의 70~80%는 이쪽이다. 말 그대로 자연인처럼 아주 편안하게 다닌다. 한여름에는 반바지에 샌들, 박스 티셔츠만 입고 출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같은 가을철에는 청바지에 티셔츠, 후드 집업 혹은 야상 점퍼 정도다. 특별한 행사가 있거나 하는 그런 날이 아니고서는 늘 그렇게 다닌다. 신기 불편한 구두보다는 편한 운동화나 샌들 혹은 플립플롭, 셔츠보다는 티셔츠, 정장 바지보다는 청바지나 면바지를 선호한다.

 자연스레 아나운서 집의 옷장에 정장은 별로 없다. 회사에 유니폼처럼 늘 정장이 준비돼 있기 때문에 굳이 정장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혼식 사회를 보고 받는 선물 중 기피 선물 1위는 역시 넥타이다. 코디네이터가 준비해주는 넥타이가 이 색깔 저 색깔, 이 모양 저 모양, 없는 종류가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사적으로 회사의 의상을 입는 일은 당연히 금기시되고 있다.

 자연인 복장을 추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귀차니즘이다. 수시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직업의 성격 상 어차피 일하며 입는 의상이 정장 같은 단정한 계열이니 출근마저 그렇게 해버리기는 싫기 때문이다. 무조건 효율의 측면에서 접근해 편함을 가장 큰 가치로 삼는다. 방송 때마다 입어야 하는 딱딱한 의상에 대한 불만을 출근 복장의 편안함으로 푸는 거 같기도 하다.


 자연인 스타일인 나와는 달리 언제나 드레스업이 돼있는 비자연인들도 분명 있다. 약 20~30% 정도의 아나운서들은 완벽하게 피트 되는 원피스를 입고 다니거나 정장에 넥타이, 구두까지 완벽하게 조화시켜 입고 다닌다.  

 보통 20년 차를 넘긴 선배들이 이런 드레스업 스타일인데, 아마 알게 모르게 복장 규정이 존재했던 이전 시대의 직장 문화가 남아 본인의 습관으로 바뀐 게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 <인턴>에서 주인공인 70대의 인턴사원은 늘 정장에 반짝이는 구두, 심지어 손수건까지 가지고 다닌다. 30년도 넘는 후배 사원이 놀라며 매번 그렇게 입고 다니냐 묻자, 본인은 그게 가장 편하다고 대답한다. 아마도 늘 완벽히 드레스업 돼있는 선배들의 복장은 그런 맥락이 아닐까. 물론 본인들이 즐길 수도 있다. 아침 출근길 패션을 중요시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하나 더 있는 마지막 유형, 플러스알파는 패셔니스타다. 거의 없긴 한데 쉰 명 정도 되는 우리 아나운서국에 한두 명 정도가 떠오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힘 좀 준 것이 명확히 보이는 사람들이다. 조금은 난해해서 접근하기 힘든 패션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과감하게 깊숙이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패션이라는 분야는 좀처럼 넘기 힘든 벽이기에 나에겐 존경스러운 사람들이다.




방송국도 하나의 조직 사회인지라 복장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3~4년 차 때, 약 10년 전으로 기억한다. 여름 내내 반바지에 반팔티셔츠만 입고 출근하던 나에게 이곳도 엄연한 직장인데 왜 그리 단정치 못한 복장으로 출근하냐는 꼰대 상사의 주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반바지를 입지 말라는 것이었다. 혼나서 마이 아프긴 했지만 또 생각해보니 그분은 예전 시대의 분이니 그런 이야기를 할 법도 했다. 그분은 그분 시대의 대변자로서 할 말을 한 것이고, 나는 나대로 내 스타일을 굽힐 필요도 없었다.


 시대가 바뀐다는 것은 익숙함의 문제인 거 같다.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남자 직원들을 고깝게 보던 시대에 그걸 깨부수려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고, 자연스레 성별, 연차, 나이, 직급에 상관없이 너나 할거 없이 본인의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소위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도 그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큰 문제가 없다 생각하니 자연스레 자유로운 문화가 정착된 게 아닐까 한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다. 복장이 단정치 못하다고 일에 얼마나 영향이 있을까 싶다. 단정하다는 기준에도 의문부호가 달린다. 또 얼마나 나쁜 분위기를 만들어내나 싶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가 똑같이 사무실에서 정장만 입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우스워보인다. 그런 삭막함 속에서 어떤 크리에이티브가 나올 수 있을까 싶다.


 회사에서의 복장을 가지고 시대를 운운하는 것이 오버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시대의 변화를 눈에 띄게 가장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예전의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것이 무조건적이라는 것 역시 아니다. 하지만 서서히 흘러가며 바뀔 것은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복장뿐만이 아니다. 여남의 정형화된 역할, 수직적인 상명하복 문화, 내리 호통, 내리 꾸지람, 위에서 부터 아래로의 내림차순 퇴근 등 셀 수 없이 많은 바뀌어야 할 직장 문화들이 존재한다.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어색함을 자연스러움으로 바꾸는 건 결국 우리들의 몫이다. 상사에게 깨져도 10년 전부터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던 사원들처럼 하나둘씩 무언가 해보면 시대가 바뀌는 것이다. 바뀐다기보다 바꾸어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해보고 있는 작은 행동들이 모여 하나의 시대가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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