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진 Sep 29. 2020

13년 차 아나운서도 넘을 수 없는 높은 벽, 내레이션

아직 제대로 못해 마이 아파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이.아.파.>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마음껏, 이토록 자세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파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 이. 아. 파. 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4편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5편 <아나운서 되려면 무슨 과를 나와야 하나요?>

6편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7편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8편 <강렬했던 예능 출연의 기억과 유느님의 은총>

9편 <선택을 하기보다 받아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10편 <아나운서의 숙명, 뉴스 특보와 뉴스 속보>

11편 <뉴스 앵커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이유>

12편 <아나운서국에 날아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선물들>

13편 <아나운서들은 죄다 욕망 덩어리?>

14편 <아나운서국에도 돌+아이가 있다?>

15편 <아나운서의 기본, 라디오 뉴스>

16편 <아나운서들이 피할 수 없는 그것, 방송 하차 통보>

17편 <아나운서들은 방송 안 할 때 뭐하니?>




 아나운서들도 각자의 목소리, 성향, 선호도에 따라 잘 맞는 프로그램이 있고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나운서의 영역은 십 수 가지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 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모르긴 잘 모르지만 유재석 형님도 모든 것을 다 잘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아나운서의 수많은 영역 중 내레이션이 아직도 넘을 수 없는 벽이다. 도저히 내 능력으로는 감당이 안돼 살짝 포기한 영역이다. 이 생각만 하면 마이 아프다. 나도 멋들어진 내레이션을 하고 싶었으니까.


 내레이션은 오로지 목소리로만 하나의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이건 초고난도 스킬에 속한다. 특히나 MBC <PD수첩> 같은 경우는 50분 분량의 제작물을 한 명의 내레이터가 이끌어나간다. PD들의 취재가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맞물려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아나운서의 오디오가 흔들리거나 듣기 싫은 소리가 반복된다면, 시청자들은 50분 내내 질 떨어지는 프로그램을 봐야 하는 것이다. 혹은 자연스레 채널을 돌리게 될 것이다.


 내레이션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일정한 톤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의 톤을 길게는 50분 분량의 내레이션 내내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편히 말할 때를 떠올려보자. 사람의 목소리는 늘 일정치 않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 느껴지는 감정, 주변의 소음 등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변하기 마련이다. 언제 어디서나 듣기 좋은 톤을 찾아내 그것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은 고도로 숙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또 어려운 이유는 참으로 많다.

 대본을 읽는 것이지만 너무 읽는 것처럼 느껴지면 안 된다는 것. 말하는 것처럼 읽어야 하지만 또 너무 말하는 느낌을 주면 긴장감이나 전달력이 떨어진다.

 너무 감정이입이 되면 감정을 강요할 수 있어 곤란하다. 반대로 감정이 너무 없어도 곤란하다.

 읽는 스피드가 너무 빠르면 시청자들이 따라가지 못한다. 반대로 너무 느리면 지루하고 몰입감이 떨어진다.

 내레이터의 목소리가 너무 크면 시청하는 내내 피곤할 수 있다. 반대로 너무 조곤조곤하면 전달력이 떨어진다.


 프로그램의 범위가 워낙 넓다는 것도 내레이션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휴먼 다큐 <사랑> 같은 프로그램은 애잔하면서도 잔잔해야 할 것이고,  <출발 비디오 여행>의 내레이션은 영화의 성격에 맞게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긴장감 넘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생방송 화제집중> 같은 생활 정보 프로그램은 신나게 세상의 이야기를 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철저히 나의 경우다. 내게는 한없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내레이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척척 쉽게 해내는 장기일 수 있다. 나 역시 아직 찾지 못해서 그렇지 내 오디오와 내 성정에 꼭 맞아떨어지는 내레이션 프로그램이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지금 내레이션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엄청난 노력과 훈련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는 거다. 나처럼 어렵다고 지레 겁먹어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영역이라 생각하고 피나는 연습을 기울였을 거라는 것이다.


 아나운서는 수많은 영역의 일을 다루지만 사실 다 똑같다. 인생의 어느 한 분야를 쉽게 정복할 수 없듯이 아나운서의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내가 잘하는 것을 찾는다. 가장 먼저 해내야 하는 그 작업이 한참 걸린다. 평생 못 찾는 사람도 많다.

 만약 잘하는 걸 찾아내는 행운이 온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거기에 수만 스푼의 노력을 얹는 것이다. 이 작업은 아마도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다.

 두 가지 작업이 완성되면 나만의 주무기가 하나 탄생한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강력한 철갑 멘털까지 두르면 완벽하다. 바로 그 순간이다. 그 단계에 이르는 순간, 우리는 어느덧 한 분야의 전문가가 돼 있을 것이다.

이전 13화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