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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Sep 09. 2020

아나운서의 기본, 라디오 뉴스

기본에 충실하면 마이 아프지 않아.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이.아.파.>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마음껏, 이토록 자세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파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 이. 아. 파. 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4편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5편 <아나운서 되려면 무슨 과를 나와야 하나요?>

6편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7편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8편 <강렬했던 예능 출연의 기억과 유느님의 은총>

9편 <선택을 하기보다 받아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10편 <아나운서의 숙명, 뉴스 특보와 뉴스 속보>

11편 <뉴스 앵커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이유>

12편 <아나운서국에 날아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선물들>

13편 <아나운서들은 죄다 욕망 덩어리?>

14편 <아나운서국에도 돌+아이가 있다?>




 아나운서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매 정시에 방송되는 라디오 뉴스 진행이다. 새벽 5시부터 밤 11까지 매 시 정각이 되면 짧게는 3분, 길게는 10분 내외의 라디오 뉴스가 전파를 타고 날아간다. 1년 365일 중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가는, 아나운서국의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언뜻 보기에 시간도 그리 많이 걸리지 않고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은 라디오 뉴스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아나운서의 모든 일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업무이며, 그 난도는 아나운서의 영역 중 최상에 속한다.


 TV 뉴스는 앵커의 모습과 함께 소리를 듣거나 리포트 영상과 함께 앵커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선이 분산되기에 소리의 디테일을 잡아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라디오 뉴스는 온전히 오디오만으로 뉴스를 접한다. 모든 소음이 차단되고 그 어떤 잡음도 없는, 완벽하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공간에서 오로지 내 목소리만이 전파를 타게 되는 것이다.

 작은 숨소리부터 톤의 미세한 변화, 목소리의 크고 작음까지 내 목소리는 마치 시내 한복판 수많은 사람 앞에서 벌거벗겨진 듯 그대로 노출된다. 뉴스 진행 실력과 목소리의 안정성 등이 꼼짝없이 모두에게 들통나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리의 초고수들만이 라디오 뉴스의 강자로 평가 받는다.


 내 목소리가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 말고 어려운 점은 또 있다. 시간을 정확히 맞춰내야 한다는 것. '3분 9초', '4분 9초', '7분 22초' 등 뉴스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 그 시간이 되면 3초 이내의 오차로 시간을 완벽히 맞춰 클로징을 해내야 한다. 신입 사원 때 허둥지둥 대다 결국 뉴스 중간에 방송이 강제 종료되는 사고는 아나운서라면 한 번쯤 겪어보는 일이다.

 예전에 유재석 형님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어진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말하는 스피치의 진수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모두 혀를 내두를 만큼 정확히 시간을 맞춰 말한 유느님은 본인의 말하기 속도, 말하는 분량, 습관 등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 라디오 뉴스는 그런 능력이 또 요구되기에 참 힘들다. 숙련되지 않은 아나운서들에게는 참 마이 아프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실력에 아나운서들이 큰 시련을 겪는 것 역시 라디오 뉴스다.

 

 1년 365일 계속되기에 사고도 많다. 나도 역시 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 오후 1시 뉴스를 배당받은 날이었는데,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졸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12시 55분, 방송 5분 전이었다. 내가 있던 3층에서 라디오 뉴스를 해야 하는 11층까지 전속력으로 달려 올라갔다. 도착하니 12시 59분, 나는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리고 라디오 뉴스 부스를 바라봤다. 아뿔싸. 11년 위 선배 신동진 아나운서가 그 자리에 떡 하고 앉아 계셨다. 들어가서 내가 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지만 선배는 부스 안쪽에서 본인이 하겠다는 손짓을 했고 나는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사실 할 수도 없었다. 3층에서 9층까지 단숨에 올라왔기에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고 방송에 들어갔다간 신음소리만 내는, 그야말로 '에로 뉴스'를 전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 대신 예정에도 없는 뉴스를 진행하는 선배를 바라보던 그 짧은 4분여,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뭐라고 사과를 드려야 하나, 보도국엔 또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신입 때부터 찍혀서 회사 생활이 힘들어지겠구나 등 여러 생각이 지나갔고 드디어 선배가 나왔다. 그리고 선배는 참으로 무섭게도 나를 야외 휴게 공간으로 데려갔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선배가 불쑥 악수를 청했다. 내가 얼떨결에 악수를 하자 그제야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진이 네가 이제 진정한 아나운서가 됐구나. 이렇게 한번 사고도 쳐봐야 더 잘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이거 보도국까지 넘어가고 하면 경위서도 써야 하고 문제가 심각해지니까,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게. 그냥 너는 내가 하자는 대로 해. 신입 때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실수니 너무 개의치 말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죄송함이 두 배 세 배로 밀려왔다. 그때 느꼈던 그 따스함은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는 것 같다. 그와는 별개로 한동안 라디오 뉴스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극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년 365일 중 단 하루도 쉬지 않는 라디오 뉴스




 내가 어느 위치에 있든 기본에 충실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아나운서에겐 라디오 뉴스가 그렇다. 가장 잘해야 하고, 1년 내내 한 건의 사고 없이 잘 흘러가야 하지만, 언제나 그게 잘 쉽지 않다. 사고는 나기 마련이고, 다른 프로그램 투입으로 바빠지면 후 순위로 밀리며 소홀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기본이 탄탄하면 다른 일도 다 잘 된다. 라디오 뉴스를 잘하는 아나운서는 대개 MC, TV 뉴스 앵커, DJ, 스포츠 캐스터 등의 다른 일도 다 잘한다. 라디오 뉴스를 소홀히 해 기본기가 부족한 사람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결국 지겹도록 듣는 그 이야기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조금 빠져나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쉽게 해내고 있는 것들을 처음 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 일이 일상의 작은 반복 업무가 되기까지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들을 생각해보자. 그 일들은 처음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열심히 해 온 일들인 것이다.

 내가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해 착실히 다져온 기초 체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내게 걸맞은 보상이 반드시 찾아오게 된다. 그 날을 위해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기초를 다지며 나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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