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진 Oct 21. 2020

아나운서와 행사

상대방의 자리에도 한번 앉아 보자.

*마음껏, 이토록 자세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한번, 파헤쳐봅니다!

아나운서 하면서 그동안 마. 이. 아. 파. 왔거든요^^*


1편 <아나운서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이죠?>

2편 <아나운서의 고용 형태는? 연봉은?>

3편 <아나운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발음? 발성? 애드리브?>

4편 <라디오 DJ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5편 <아나운서 되려면 무슨 과를 나와야 하나요?>

6편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는 직업, 리포터>

7편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8편 <강렬했던 예능 출연의 기억과 유느님의 은총>

9편 <선택을 하기보다 받아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10편 <아나운서의 숙명, 뉴스 특보와 뉴스 속보>

11편 <뉴스 앵커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이유>

12편 <아나운서국에 날아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선물들>

13편 <아나운서들은 죄다 욕망 덩어리?>

14편 <아나운서국에도 돌+아이가 있다?>

15편 <아나운서의 기본, 라디오 뉴스>

16편 <아나운서들이 피할 수 없는 그것, 방송 하차 통보>

17편 <아나운서들은 방송 안 할 때 뭐하니?>

18편 <13년 차 아나운서도 넘을 수 없는 높은 벽, 내레이션>

19편 <아나운서들은 평소에 뭘 입고 다니니?>

20편 <아나운서가 왜 저래?>




 아나운서에게 늘 따라다니는 것이 행사 진행이다. 아나운서는 진행의 전문가다. 진행 인력이 반드시 필요한 행사에 아나운서는 필수요소다. 작게는 사내 행사부터 크게는 정부 행사에 이르기까지 아나운서는 사회자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부름을 받고 달려간다. 다만 공중파 아나운서는 사익을 목적으로 한 기업 행사는 철저히 제한되기 때문에 주로 지자체나 정부 행사에만 파견된다. 공익에 부합되는 행사에 한해서만 외부 활동 신고를 하고 참여할 수 있다.


 나도 1년에 한두 번쯤 행사에 섭외돼 돌아다녀 보니 하나 느낀 게 있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행사가 존재한다는 것. 아주 작은 단체부터 크게는 대한민국 정부에 이르기까지 주관 부서도 다양하고 주제도 다양하다. 내가 다녀왔던 지자체 및 정부 행사만 돌이켜 봐도 <경기도 구석기 축제>, <나트륨 줄이기 행사>, <항공의 날 행사>, <경찰의 날 행사>,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기념 청와대 오찬 행사> 등 온갖 종류의 행사가 있다.


 그래도 아나운서로 입사해 가장 많이 한 행사는 역시 결혼식 사회다. 아나운서 입사 후 13년 동안 족히 100 커플은 채우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나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나운서들은 예비 신혼부부의 섭외 대상 1순위다. 사회 보는 사람도 편하고 사회를 부탁하는 사람도 행복한 행사는 결혼식이 유일한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기에 온통 좋은 말만 하고 돌아오면 되기에 그렇다. 결혼식 외의 다른 행사들은 성격에 따라 버겁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도 있다.




 오늘 마침 아산에서 있었던 <제75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을 진행하고 올라왔다. 내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순직 경찰 가족에 대한 예우였다. 공무 중 순직한 남편을, 아빠를 먼저 떠나보낸 한 가족에게 대통령이 영웅패를 친수하는 순서가 있었다. 말투 하나하나, 톤의 높낮이 등 모든 것이 신경 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잘못된 문구를 수정하는 것, 예의를 갖추고 존중을 담아 행사를 진행하는 것, 이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진행자라면 놓쳐선 안 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지금 저분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오셨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음을 완전히 헤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무섭고 겁이 났다. 그리고 순직 경찰에 대해 우러러 나오는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그렇게 그분들의 의미 있는 죽음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는 것이 내가 꼭 해야 할 일이었다.  


 아마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다른 행사들처럼 끝나고 바로 출발하지 않고, 순직 경찰 가족들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격려한 뒤에야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의 그런 행동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봐 왔기에 더욱더 감동적으로 와닿았다.


 행사 진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게 그 집단을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행사를 위해 잠시 만나는 단체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궁금한 것은 물어봐야 한다. 물어보며 그들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면, 아주 조금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더 나은 행사 진행이 가능해진다.


유려한 말솜씨, 화려한 개그, 빛나는 외모도 물론 좋다.

하지만 가장 먼저 가져야 할 자세는 바로 상대의 자리에 한번 앉아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진행자가 잊어선 안 되는 단 하나의 일이다.



*매주 수요일에 연재하던 아나운서 파헤치기.

<김나진 아나운서의 마. 이. 아. 파.>는 오늘을 끝으로 잠시 쉬어갑니다.

11월 에세이 출간과 브런치 북에 도전하기 위해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목표했던 20편을 채웠고, 담고 싶었던 내용들을 절반도 훨씬 넘게 담아낸 것 같아 뿌듯합니다.

이 연재는 적당한 시기에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이전 14화 13년 차 아나운서도 넘을 수 없는 높은 벽, 내레이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