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거 불안해서 그러는 거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네가 나에 대해 뭘 아냐’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 말이 맞았다. 인정하기 싫었을 뿐.
나는 나 스스로가 성취감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함이 깔려 있었다. 화장실에 못 갈까 봐 불안해하기 전에는 늘 세상으로부터 뒤처질까 봐 불안해했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서, 가만히 있으면 나만 도태될 것 같았다. 굶어 죽을까 봐 두려웠다.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제 밥벌이는 하기 위해 늘 발버둥 쳤다. 매일 같이 자기 계발을 해야 마음이 편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캘린더는 일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출근 전에는 운동하러 갔고, 퇴근 후에는 세미나에 참여했다. 향후 한 달간은 일정이 빽빽해서 친구를 만나려면 다음 달에나 약속을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번 주말엔 절대 아무 데도 안 나가고 집에서 쉬어야지!’라고 다짐해 놓고도, 어떻게든 일거리를 만들어서 밖에 나가고야 말았다. 나 자신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몸이 아프고 난 뒤에도,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멀리는 못 가더라도 집 근처 도서관이라도 갔다.
그날도 그랬다. 퇴근 후에 가려고 몇 주 전부터 신청해 놓은 세미나가 있었다. 그런데 전날 저녁에 먹은 게 잘못되었는지 속이 완전히 뒤틀려 버리고 말았다. 약을 먹을까 하다가 더는 약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약 없이 극복해 보기로 했다. 화장실을 몇 번이고 들락거리면서도 오로지 버티기만 했다. 점심엔 밥도 굶고 낮잠을 잤다. 그런데도 도무지 힘이 없어서 퇴근 후에 그냥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오랜만에 집에서 쉬게 되었다. 모처럼 집에 와서 빨래를 돌렸다. 삶는 빨래는 세 시간이나 걸려서, 주말에만 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청소기를 돌렸다. 좁은 원룸이지만 구석구석 청소하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게 낯설었다. 오랜만에 정성스레 요리를 했다. 스스로에게 대접하는 기분으로, 예쁜 그릇에 담아냈다. 따끈하게 김이 나는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니, 온기가 입안 가득 퍼졌다.
식탁 위에 거치대를 세우고 핸드폰을 올려 놓았다. 요즘 알고리즘이 엉망이네- 하며 한참 동안 스크롤과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반찬을 세 번쯤 집어 먹고, 국을 한 번쯤 떠먹었을 때야 볼만한 영상을 겨우 찾았다. 아이유가 나온 유퀴즈 방송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부럽네- 멋있네- 하며 식사를 이어가던 중, 음식을 나르던 손이 허공에 멈춰 섰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열심히 한 건 일 뿐이었고, 나 자신과 주변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했더라고요.” 내 얘기 같았다. 나는 무엇 때문에 항상 쫓기듯 살아야 했을까.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앞만 보며 살아왔을까. 나 역시도 내 삶을 영위하기도 벅차서 주변을 돌아 볼 여력이 없었다.
아니, 주변을 돌아 볼 것도 없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조차 제대로 못 챙기고 있었으니까. 곁에 있는 게 너무 당연해서 곁에 있다는 것도 잊었던, 엄마. 어쩌다 출퇴근길에 짧게 안부를 묻는 게 전부였다. 밥을 먹다 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을 가다듬으려는 찰나, 전화를 받은 엄마가 어쩐 일이냐며 반가워했다.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통화를 했다. 시시콜콜한 근황으로 시작한 대화는 갓 지은 밥이 식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화가 길어지면서 진지한 이야기도 오갔다. 엄마는 퇴사한 직원이 정보를 빼돌려서 소송을 진행 중이고, 아빠는 정년퇴직이 얼마 안 남아서 살짝 우울증이 온 상태라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른 채 아프다고, 불안하다고, 징징거리기만 했다니. 내 상황을 알아 주기만을 바랐지, 가족들의 상황은 궁금해하지도 않았구나. 안 그래도 힘든 부모님을 더 힘들게 만들었네. 진짜 한심하다, 한심해.
얼마 뒤에 있을 연휴에는 본가에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마침,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쾌청한 가을이 너무 짧아서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연말연시엔 약속이 많아서, 봄에는 꽃이 피어서- 하며 이유를 대다가 보면 평생 아파야 할 것 같았다. 이번 가을을 온전히 쉬면서 회복의 계기로 삼기로 했다.
추석부터 개천절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 내내 집에서 집밥만 먹으며 지냈다. 어느 정도였냐면, 현관문을 열어 보지도 않았다. 엄마 아빠를 맞이하러 신발장에 간 게 전부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루해했겠지만, 나에게는 생각보다 평화로웠다. 아픈 뒤로 자취방에서 절 밥 같은 음식만 먹느라 취향이 많이 단조로워진 듯했다. 맛집 탐방을 즐기는 타입이라면 무척 괴로웠을 테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문제는 연휴 마지막 날에 예정된 본가의 이사였다. 이사 가는 집은 원래 살던 집과 거리가 멀지 않기도 했고, 살던 집이든 이사 갈 집이든, 연휴 내내 ‘집’이라는 안정적인 공간에서 지낸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이사 당일이 되니, 예상과는 달랐다.
아침 일찍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들이닥쳐, 능숙한 손놀림으로 집안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물건들은 수년간 지키던 자리에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옮겨졌다. 낯선 사람들이 집안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화장실은 진작에 점령당해 휴지나 비누 따위를 빼앗기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잠시 화장실 좀 쓰겠다고 한다?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관리사무소에 있는 화장실을 쓰고 말지.
원래 살던 아파트는 단지가 손바닥만 했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집이 코앞이었고, 관리사무소나 상가도 가까워서 급하면 바로 화장실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새로 이사 가는 아파트 단지는 전보다 세 배는 넘게 커서, 게이트에서부터 집까지 가는 길만 해도 한참이었다. 지상에 화장실은 없고 쓸데없이 놀이터와 정원만 많았다. 분명 좋은 일이지만, 싫었다. 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딱 하나 좋은 점이 있었다. 전보다 더 낮은 층으로 이사했다는 것. 엄마 아빠는 햇빛이 덜 들고 시끄럽다며 아쉬워했지만, 나는 1초라도 더 빨리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이사가 끝나고 엄마 아빠는 새로 이사한 동네를 둘러보자고 했다. 나는 화장실 친화적이지 않아서 불안하다며, 집에 있겠다고 했다. 엄마 아빠를 보내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다음 날이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잘 먹고 잘 쉬어서 건강이 많이 회복된 건 분명했다. 그리고 가족들과의 시간도 행복하게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히려 더 겁쟁이가 된 기분도 들었다. 너무 집에만 있었더니,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됐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끝도 없이 겁나는 걸까. 쉬어도 문제, 안 쉬어도 문제면 어쩌라는 건지.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것처럼, 나도 새로운 삶으로 이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