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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골방 Jan 22. 2024

우리의 마음은 왜 알기 어려울까

프로이트의 지형학적 모델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도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 참 쉽지 않았나 봅니다. 요즘의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쉽게 느껴질까요? 저 질문에 사람들마다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덕분에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들이 비교적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오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보고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투덜대고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왜 이렇게도 어려울까요?


  사람의 마음에는 자기 자신도 모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무의식의 영역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책을 골랐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선택했다고 표현하죠. 이처럼 무의식은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단어이고, 그만큼 무의식은 우리의 삶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무의식은 이름이 뜻하듯이 의식적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기엔 무의식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컸고, 결국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서 정신분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 (출처 : Pixabay)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가 첫 번째로 제시했던 마음의 구조는 지형학적 모델(topographical model)이였습니다. 지형학이란 내부적 구조와 기능을 알아가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지형학적 모델에서는 마음을 3개의 구조로 나눌 뿐만 아니라, 각 구조가 하고 있는 기능까지도 설명하고 있어요.


  프로이트는 지형학적 모델을 빙산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래의 빙산 모형을 먼저 보시고 나서, 나머지 글을 읽으신다면 이해가 더 빠르실 거에요. 마음 구조를 빙산에 비유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수면 위로 떠오른 빙산뿐이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수면 위로 떠오른 빙산은 전체 빙산의 극히 일부라는 점입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지형학적 모델에서는 의식, 전의식, 무의식 순의 수직적인 마음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우리가 존재한다고 알아채기 어려운 마음이에요.

  

표면에 있는 의식은 전체 마음 중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전의식에 있는 것들은 집중해서 의식으로 떠올릴 수 있지만, 무의식에 있는 것들은 의식으로 떠올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의식(consciousness)을 먼저 살펴볼까요. 수면 위에 떠오른 빙산만이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듯이, 수면 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의식은 음 구조에서 현실을 인식하는 감각기관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이 길가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을 경험하면 우리의 마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선은 마음이 아닌, 몸이 먼저 현실을 감각하겠죠. 우리의 눈으로는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목격하고 우리의 귀로는 쓰레기가 버려지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렇게 오감을 통해 얻었던 정보들이 몸에서 마음으로 넘어갑니다. 바로 이 순간 정보들은 전의식이나 무의식으로 전달되지 않고 오로지 의식으로만 전달됩니다. 이제 의식을 통해서 마음에서도 현실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 감각할 수 있게 되었죠. 의식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분노의 감정을 느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똑같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지만 분노해봐야 나만 손해라며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듯 의식에서는 생각, 감정, 감각 등이 다양하게 존재해요. 의식에 있는 것들은  모두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제 한 층 내려가서 전의식(preconsciousness)을 살펴볼까 해요. 의식과 달리 전의식에 있는 존재하는 것들은 우리가 집중을 해야 인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제 저녁을 어떤 걸로 드셨나요?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뜬금없는 이 질문에 잠시나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책의 내용에 집중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제 저녁 메뉴가 '떠오르셨나요'? 여러분은 잠깐의 집중을 통해 수면 아래의 전의식에 묻혀있던 어제 저녁 메뉴를 수면 위의 의식으로 떠올리셨습니다. 이처럼 전의식은 의식에 밀려나서 지금은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지 않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집중해서 얼마든지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에요.


  이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무의식(unconsciousness)을 볼까요. 의식이나 전의식과는 다르게, 무의식에 있는 마음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의식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해요. 무의식은 의식에서 추방된 것들이 존재하는, 마음의 유배지와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죄를 지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이 유배형을 받게 되었죠. 그럼 무의식에 있는 것들은 어떤 이유로 유배를 떠나게 된 걸까요? 의식에 남아있기에는 지나치게 난폭해서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충동이 성적 충동(libido)과 공격적 충동(aggression)이라고 보았는데요, 이 충동들이 만약 무의식으로 전혀 내려가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성범죄와 폭행범죄가 만연한 끔찍한 세상이 될 수 있겠죠. 그래서 사람은 개인과 사회의 안전을 위해 충동에서 오는 위험한 생각이나 느낌들을 무의식 속으로 억눌러서 꼭꼭 숨겨둡니다.


  이처럼 무의식은 우리의 정신적 안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아주 위험한 충동들이 억눌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원래도 난폭했던 충동들이 무의식 속에서 유배형을 얌전히 당하고만 있을까요? 그럴 리가 없겠죠. 이 충동들은 언제든 세상으로 빠져나와 충족되고, 이를 통해서 자극적인 쾌락을 얻을 수 있기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은 쾌락 원칙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쾌락 원칙이란 충동의 즉각적인 만족을 통해 쾌락만을 추구한다는 뜻이에요. 반대의 뜻을 가진 단어로는 현실 원칙이 있습니다. 이름이 뜻하듯이 쾌락보다는 사회적 규범이 존재하는 현실을 우선시하는 원칙이에요. 의식과 전의식은 현실 원칙을 따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현실 원칙에 따르지 못하는 생각이나 마음들이 무의식으로 쫓겨난 것이니까 무의식 외의 마음들은 현실 원칙을 충실히 잘 따를 수 있겠죠.




   이제 마음을 알기 어려운 이유가 이해되셨나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마음은 의식에 존재하는 것들 뿐이고, 나머지 층에 존재하는 것들은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거나 노력해도 아예 꺼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관심은 가장 알기 어려운 무의식에 있었습니다.


  정신분석에는 두 개의 대전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정신 결정론(psychic determinism)이고, 둘째는 역동적 무의식(dynamic unconsciousness)입니다. 정신 결정론은 쉽게 표현하면 '현재의 모든 행동, 감정, 생각은 과거의 행동, 감정, 생각에서 온다'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분석에서는 실수에도 심리적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내담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거나 난감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내담자가 말실수를 한번 하면, 치료자는 말실수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고민을 시작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A씨의 이야기를 한번 보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면 어떨까요?


오늘 너무 피곤했던 A는 커피를 마시면서 버티고 있는데, A의 코에서 코피가 흐릅니다. A는 코피를 보자 최근 과도한 업무로 힘들었던 것들이 떠올라 동료들에게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막상 이야기하려니 다들 일이 힘든 상황인 것 같아 하소연을 목구멍으로 삼킵니다. 그러다 우연히 동료를 만나서 같이 카페나 가자고 말하려 하지만, 여기서 A는 말실수를 하게 됩니다. "코피 한 잔 할래요?"


  A가 이런 말실수를 하게 된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으세요? 원래 A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코피가 난 것을 말하고 싶었던 마음을 전의식 속에 묻어두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힘들어도 너무 힘들었는지, 동료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나봅니다. 결국 A가 전의식 속에 묻어두려고 했던 코피가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와서 의식에 도달했습니다. 결국 A의 입에서는 커피가 아니라 코피가 나왔죠. 원래 의식에 있던 커피가 있어야할 자리를 전의식에 있던 코피가 대신 차지해버린 셈이에요.


원래는 전의식에 숨겨두려고 했던 코피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더니 결국 수면 위로 올라와서 의식에 도달했습니다. 결국 원래 의식에 위치했던 커피가 떠밀려서 자리를 잃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야 이런 말실수는 그냥 웃고 넘어가겠지요. 하지만 프로이트는 이러한 실수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실수의 의미를 찾아가면서 무의식까지 탐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프로이트는 내담자가 주는 정보들은 단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했거든요.


  두 번째 대전제인 역동적 무의식이란, 무의식은 역동적으로 활동하며 현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전에 설명드리면서 무의식은 얌전히 있지 않고 쾌락원칙에 따라서 세상으로 빠져나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무의식에 있는 성적 충동이나 공격적 충동을 날것의 모습 그대로 세상에 내보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공격적 충동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모습을 바꿔서 권투나 레슬링 같은 스포츠 활동으로 세상에 나오기도 해요. 참고로 이렇게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무의식이 변형되는 것은 방어기제 중 승화에 해당합니다. 방어기제에 대해서는 향후에 한번 자세히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거에요.




  이제까지 설명드린 정신분석의 두 가지 대전제는 다음과 같이 합쳐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신분석이 무의식을 탐구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무의식 속에 억눌려있는 과거는 현재의 모든 행동, 감정, 생각에 영향을 끼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나서 여러분의 무의식이 조금은 궁금해지지 않으셨나요? 만약 궁금해지셨다면 마음 산책을 떠날 준비가 되신 것이고, 앞으로 걸어가실 길도 의미 있게 사용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남은 길도 저와 함께 무사히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랄게요.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무의식을 알아야
우리의 마음도 알 수 있어요.
이전 01화 정신분석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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